[백세시대 금요칼럼] 기억하니, 행복하자!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기억하니, 행복하자!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1.07.16 14:08
  • 호수 7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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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별의 고통 뒤에 새로운 인연

전처럼 허세를 부리지 않아도

한결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내게 오는 사랑에 대해

기꺼이 곁을 내주어보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우리네 아리랑의 애간장 끊어지는 절규를 모두가 안다. 하지만 요즘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안 가서 재혼한다!’ 요즘 사랑이 전과 다르다는 보장은 없으나, 이혼도 많아지고 재혼도 흔한 세상에 절규하는 사랑은 그저 흑백영화에나 있었던 이야기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생면부지 알지 못하던 사람에게 끌리고 만나고,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약속하다니, 인간은 자못 놀라울 정도로 종교적 존재가 맞다. 

그러나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그 인연도 유통기한이 있기나 한지 이별은 삶의 틈새를 파고들고, 이내 남몰랐던 사람들처럼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다짐한 듯 절대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길에는 고통과 스미는 슬픔이 흔적처럼 남고, 둘이 했던 결혼은 가족에게는 이혼으로 남으며 마음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그 님의 심정과 같다. 

그러나 오죽했겠는가, 그 마음! 누가 알겠는가, 그 심정! 타인의 불행에 뭔가 더 아는 척하는 것은 그의 모든 삶을 두고 행하는 무례일 것이다. 이별은 늘 고통스럽고 아프다. 그리고 찢어지는 고통 이전에 둘은 충분히 더 많은 눈물과 두려운 분노와 절망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렇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아리랑 고개를 뒤로하고 삶의 피눈물을 닦아내고 나면, 다시금 삶은 어김없이 전진한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사랑의 시련이야 있겠냐마는 우리는 신에게 망각을 선물로 받고, 고독의 공간에서 긴 신음을 하다 결국 다시금 관계의 연못에 몸을 담근다. 누군가에게 더 신중해진 걸음을 좁혀가고, 더 많은 생각으로 밤을 지새며, 전에 내었던 용기의 100분의 1뿐인 걸음으로 신중한 시작을 한다. 

눈치도 보이고, 실패도 두려우며, 말리는 이들도 많아진다. 말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더 간절해진다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처럼 우리는 다시 올까 싶은 사랑에 다시금 빠져들고야 만다.

새로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사랑의 냄새가 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심장 비트가 있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는 곧 고독의 선을 넘게 된다. ‘페닐에틸아민’이란 사랑 호르몬은 이내 다시금 대폭발하여 사랑의 재가 마음을 적시고, 백발을 빗고 염색으로 늙음을 가리고 싶은 마음이 새순처럼 올라온다. 

더 일찍 약속 장소에 나가고, 한껏 꾸몄다가도 다시금 옷을 갈아 입어본다. 만날 장소에는 어제 벌써 답사를 다녀오고, 같이 걸을 산책로도 확인해두었다. 아, 사랑이어라!

전처럼 빠르게 걷지 못하기에 걸음은 더 더디다. 그러나 그 속도가 이리 좋을 줄이야! 전처럼 허세를 부리지 않아야 더 깊은 인연이기에 한결 자연스러우니, 세상 이렇게 편할 줄이야! 속아도 보고 속여도 봤던 그 시절을 기억하니, 마음에 세월의 덕이 생겨나 시선은 더없이 부드럽구나! 느려진 심장박동에 가끔 단비 같은 속도가 붙으니 젊은 심장을 경험하고, 꽃무늬 원피스를 꺼내입고 양산을 펴보니 마음은 겨울 꽃대궐이라!

알다시피 기억은 늘 부끄럽다. 저릿한 수치심은 잊혀지지 않고 기억의 교훈이 되었기에 이제는 그나마 실수도 덜 한다. 인물이 좋지 않다 해도 부드러운 웃음이 더 매력 있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다. 

세월의 채찍으로 두터워지고 상한 마음의 문지방을 수없이 넘어가며 단련한 마음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돌아보면, 그야말로 우리는 기꺼이 사랑해야 한다. 사선을 넘듯 감정과 관계들을 넘어왔고, 숱한 후회의 딱지들로 마음도 꽤 두툼해졌다. 인생의 허들처럼 넘어왔던 삶의 통증이 이제는 마음 근육이 되었고, 후회로 다져진 기억은 깔고 앉을 마음 돗자리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은근히건, 화끈하게건, 내게 오는 사랑을 다시금 잠잠히 지켜보자. 내게로 걸어오는 사랑에게 곁을 내주어보자. 전보다 느리게 걸어오는 걸음이면 좋을 것이고, 전보다 천천히 다가가는 움직임이라면 그쪽도 좋을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그리고 겁먹지 말고,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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