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처럼…” 존엄사 뜨거운 관심
“추기경처럼…” 존엄사 뜨거운 관심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2.23 13:56
  • 호수 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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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대다수 “가능성 없는 연명치료 원치않아”

‘사전의료지시서’ 공증 접수 받는 행사 열리기도

최근 존엄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다. 최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연명치료를 거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존엄사에 대한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쪽은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 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인사회와 어르신들은 소생 가능성이 없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은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에게 마지막까지 ‘짐’이 될 수 있고, ‘품위 있는 자존감’이 훼손된다는 이유 등으로 존엄사를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존엄사가 이슈로 떠오른 때는 지난해 11월. 뇌사상태에 빠진 김모(76·여)씨 자녀들이 어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며 서울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후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논란이 가열됐다.

존엄사(尊嚴死)는 소생 불가능한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安樂死)와는 구분된다.

법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결정권에 근거해 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해석했지만 “무분별한 생명단축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들어 연명치료 중단이 허용가능한 4가지 가드라인도 제시했다.

가드라인은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비가역적 사망과정에 진입할 것 △환자에게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가 있을 것 △고통을 완화하는 치료나 일상적 진료는 중단 불가 △의사(醫師)에 의한 치료 중단의 시행 등이 제시됐다.

즉, 소생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가 연명치료가 아닌 자연스런 죽음을 맞으려는 의사(意思)를 분명하게 지녔다면 치료중단 가능하지만 충동적 또는 단편적 의사 표명에 따라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판결이 내려지자 존엄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신상진 의원(한나라당)은 2월 5일 회복가능성이 없고 연명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단기간 내 사망에 이르는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존엄사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앞서 1월 12일 경실련은 말기환자에 부착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허용한 것과 관련,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하라는 내용의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는 등 존엄사를 제도화하기 위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존엄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계층은 노년층이다. 어르신들은 “의학적으로 소생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존엄사를 찬성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같은 노인사회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 의미 있는 행사가 경기 용인시에서 마련됐다. 이 지역의 실버타운 ‘명지엘펜하임’은 2월 13일 60세 이상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전의료지시서 공증을 접수받는 행사를 마련했다.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 문서형태로 자신의 의사(意思)를 밝히는 지침서가 ‘사전의료지시서’다.

사전의료지시서는 기도삽관, 기관지 절개술 및 인공호흡 치료법을 시행 금지 △항암 화학요법 시행금지 △인공영양법, 침습적 치료술 시행금지 △탈수와 혈압유지를 위한 수액요법과 통증관리 및 생리기능 유지를 위한 완화치료는 계속 희망하지만 임종 시 혈압상승제 투여와 심폐소생술은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버타운과 행사를 공동주관한 이 윤(웰다잉 전문강사·76)씨는 “지난해부터 몇 차례 죽음준비강의를 하면서 노인들이 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다”며 “회생가능성이 없을 때 무의미한 연명에 반대한다는 다수 의견에 따라 공증담당기관을 통해 사전의료지시서 공증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법무법인 ‘서울제일’ 김진섭 변호사와 직원들이 참석, 저렴한 비용으로 어르신들이 미리 작성한 사전의료지시서와 유언장을 접수, 상담했다. 이날 접수된 사전의료지시서와 유언장은 차후 공증절차를 거치게 된다.

특히 이날 행사에 무려 70여명의 어르신들이 참석해 존엄사를 옹호하는 어르신들의 관심을 방증했다.
황철구(74) 어르신은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나 식물인간이 된다면 의료기기에 연명해 고통받고 싶지 않다”며 “하늘이 준 생명 그대로 자연사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형진(78) 어르신도 “무의미한 연명은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부담을 안겨준다”며 “이를 막기 위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진섭 변호사는 “존엄사에 대해 입법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히면 분쟁을 막는 기준이 된다”며 “또한 의료진은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거나 성의 없는 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름답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죽음전문강사를 육성하는 기관도 생겨났다.

각당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회장 홍양희)는 55세 이상 전문직 퇴직자를 대상으로 일주일에 2차례씩 3개월 동안 한국인의 죽음이해를 비롯해 호스피스, 슬픔치유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웰다잉’(well-dying) 전문강사를 양성하고 있다.

홍양희 회장은 “지금까지 어르신들 사이에서 ‘죽음’이 금기시 됐다”며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매우 중요해 전문강사 양성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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