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시 맞이하는 광복절을 기념하며
[기고] 다시 맞이하는 광복절을 기념하며
  • 김한기 전 경북연합회 노인지도자대학장
  • 승인 2021.07.30 14:33
  • 호수 78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한기 전 경북연합회 노인지도자대학장
김한기 전 경북연합회 노인지도자대학장

우리나라는 36년간 일제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나라의 글을 빼앗겼고 강제로 우리의 이름도 쓰지 못했다. 피땀 흘려 지어놓은 농사는 공출이란 이름으로 수탈당해 민중들은 배고픔의 세월을 보냈다. 마을의 어린 처녀들은 일본군의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가 처참한 성노예가 됐고, 장정들도 징용당해 포탄과 군량미를 나르다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마을의 공터는 일본식 제식훈련장이 됐고 월요일 아침마다 학생들은 일본 신사로 끌려가 강제로 참배를 해야 했다. 긴 칼을 찬 경찰들은 일본을 비방하는 조선인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었고, 총독부는 ‘내선일체’를 위한 정책홍보에 목숨을 건 듯했다. 또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각 가정마다 대대로 물려받은 놋그릇을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죄다 앗아갔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음력설도 쇠지 못하게 하려 학생들을 등교시켰으나 조상들은 제사를 지내고 고유의 민속놀이를 하며 전통을 잇고자 노력했다. 

이와 같은 온갖 수난을 참아낸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나라의 치안은 혼란의 늪으로 빠졌다. 관공서는 텅텅 비었고 일본인들은 몰래 숨어 귀국선에 올랐다. 

한반도는 두 토막으로 나뉘어 남한은 미군이, 북한은 소련군이 주둔해 군정 체계하에 놓이게 됐다. 38선이 그어졌고 우리나라는 분단국으로 살아야 하는 비운의 나라가 됐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남한의 지도자로 부상해 초대 대통령이 됐고 북한은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나뉘어진 나라에는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찾아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나라는 온전한 곳이 없었다. 수십만의 희생 끝에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긴 휴전에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는 전쟁의 아픔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한마음이 된 국민들은 굳건한 재건의 정신과 앞날을 바라보는 지도자들의 지혜로 발전을 거듭,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풍요롭고 힘센 나라로 우뚝 섰다. 

임진왜란 발발 전 율곡 이이 선생은 “왜적이 침범할지 모르니 10만군을 양성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묵살당했다. 만약 10만 양병설이 받아들였더라면 전쟁은 빠른 승리로 끝났을지 모른다. 아예 10만 대군에 겁을 먹고 침략 시도조차 포기했을 수도 있다.

뜻깊은 광복절을 맞아 나라를 잃었던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다시 한 번 무장할 때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생을 바친 독립 투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하나 된 마음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하나 된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해 전국 방방곡곡에 태극기 물결이 넘쳐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