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팔만대장경을 들여다 보니…”
[백세시대 / 세상읽기] “팔만대장경을 들여다 보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8.13 15:13
  • 호수 7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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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팔만대장경은 범접할 수 없는 ‘보물단지’로 여겨진다. 아무도 그 수많은 목판본에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여름휴가 때 우연히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하나같이 재밌고 윤리·도덕적이며 삶의 긍정적 메시지여서다.

국보 82호 팔만대장경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보물이다. 대장경은 경·율·논을 말하며 부처의 가르침인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것이다. 고종 23년(1236)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제작하기 시작해 고종 38년(1251)에 완성했다. 총 8만1258개 목판 양면에 글자를 새겨 넣어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민심을 모으고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만들었다. 거란족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전남 나주까지 피난 간 현종은 신하들과 함께 초조대장경을 만들었다. 이즈음 거란족이 화의를 맺고 물러가자 사람들은 부처의 도움으로 평화가 찾아왔다고 믿었다. 

이후 몽골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던 초조대장경의 판목이 불에 타자 무신들은 다시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희망을 갖고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길 때마다 절을 세 번씩 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 수천만 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김이 고르고 잘못된 글자가 없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의 부처 말씀을 한마디로 줄이면 ‘권선징악의 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 나쁜 일을 하지 말라. 나쁜 일을 하면 화를 만난다”와 같은 인간 수양의 원초적 가르침이다.

부처의 전생을 동물·조류·신화·전설을 빌려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본생담’(本生譚)이라고 한다. 본생담 547개를 하나로 엮은 ‘본생경’이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4세기였다. 본생경의 내용이 유럽에 전해져 이솝이야기에 인용되기도 했다. 팔만대장경에 소개된 본생경 일부를 발췌한다. 

▷왕이 500마리 군마를 이끌고 나가 전쟁에서 이겼다. 이 때 500마리 나귀는 군마의 먹이를 운반했다. 전장터에서 돌아온 왕은 마부들에게 “전공을 세운 군마들이 매우 지쳐 있다. 국물을 곁들인 먹이와 포도주를 주도록 하라”고 분부를 내렸다. 군마들은 맛나고 향기 있는 먹이를 먹고 제 외양간에 들어가 조용히 쉬고 있었다. 마부들이 왕에게 “군마들의 먹이를 운반하는 저 나귀들에게는 무엇을 먹일까요?”라고 물었다. 

왕은 “군마들이 먹던 찌꺼기를 주어라”라고 했다. 마부들은 말이 먹던 찌꺼기를 나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귀들은 “어 맛있다. 맛이 기가 막히군”하면서 찌꺼기를 먹었다. 술 찌꺼기를 먹은 나귀들은 취해서 떠들며 돌아다녔다. 

마부들이 이를 보고 “역시 어리석은 것들은 도리가 없어. 더 좋은 음식을 먹은 군마는 아무 말이 없는데 나귀는 찌꺼기를 먹고도 저 꼴이니”라고 말하며 나귀들을 모두 외양간에 가두어 버렸다(본생경 183번째 이야기). 

▷성 밖 20리 되는 곳에 좋은 약수터가 있었다. 왕이 성 안 사람들을 바꾸어 가며 약수를 길어 왕궁으로 가져오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약수 길어오는 일이 힘들다.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고 투덜댔다. 원성이 자자하자 촌장이 대궐을 들어가 왕을 만난 자리에서 “대왕님, 약수 길어오는 것이 백성들에게 고된 일이 되고 있습니다. 20리는 너무 먼 길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이 “그럼 몇 리면 적당할까”하고 물었다. 촌장이 “5리면 그다지 먼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이 “말을 바꾸어라. 20리를 고쳐서 5리로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촌장이 “예예, 그러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마을로 돌아와서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현명하신 대왕께서 약수터까지의 거리 20리를 5리로 고치셨다. 거리가 4분의 1로 줄었다”고 외쳤다. 마을사람들은 물그릇을 들고 집을 나서며 “고마운 대왕님이시다. 5리면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자 약수를 길으러 가자”고 말했다(백유경 34번째 이야기).

어디서 익숙하게 보았던 장면들이 아닌가. 2016년 교육부 고위직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기원전 부처님 말씀이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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