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탈레반에 정권 넘어간 아프간 … 재연된 ‘사이공 탈출’에 국제사회 충격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탈레반에 정권 넘어간 아프간 … 재연된 ‘사이공 탈출’에 국제사회 충격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1.08.20 13:36
  • 호수 7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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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정부가 이슬람 무장 조직인 탈레반에 허망하게 항복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1년 9·11사태 후 미군의 탈레반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탈레반의 재장악으로 끝이 났다.

탈레반은 지난 8월 15일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전쟁은 끝났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대통령궁에는 탈레반기(旗)가 게양됐고, 미 대사관에선 성조기가 내려졌다.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로 망명했다. 

이는 지난 5월 아프간 주둔 미군이 단계적 철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당초 탈레반이 카불까지 진격하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란 전망은 빗나갔다. 아프간 주요 거점도시 장악 10일 만에 카불까지 점령해버렸기 때문이다. 수도가 넘어가면서 아프간은 20년 만에 다시 ‘탈레반의 나라’가 됐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아프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초기엔 알카에다 색출과 탈레반 정권 붕괴를 목표로 했지만, 이후 민주주의 수출을 명분으로 ‘정상 국가’를 건설하는 방향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정교한 전략 없는 무모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아프간 친미 정권은 무능했고 군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국민들이 이런 정부를 지지할 리도 없었다. 결국 30만 정부군은 8만의 탈레반에 백기투항했다. 자위력을 포기하고 외국에 의존하는 정권의 말로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아프간 정부의 붕괴는 20년간 2조 달러 이상 쏟아부은 미국의 실패이기도 하다. 미군 주둔을 연장해도 상황 변경은 어려웠지만 바이든 정부의 오판도 사태를 키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5주 전까지 “제2의 베트남 사태는 없다”고 장담했으나, 예상 밖의 카불 함락에 미군 헬기가 현지 대사관 상공을 오가며 직원들을 긴급 대피시켜야 했다. 

여기에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공항으로 달려가고 총격 소리가 끊이지 않는 카불의 혼돈은 1975년 ‘사이공 탈출’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붕괴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인정하면서도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옳은 결정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아프간에서 벌어진 상황은 아프간에서의 미군 개입을 지금 종식하는 게 옳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강하게 입증한다”면서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는 분쟁에 무기한 남아서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국제사회는 억압적 정권으로의 회귀를 우려하고 있다. 탈레반이 집권했던 1996~2001년 아프간에선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내걸고 여성의 교육과 사회활동은 물론 외출까지 금지될 정도로 극단적인 여성 인권 탄압이 자행된 바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의식한 탓인지 여성 인권 보호와 평화로운 국제관계 등 유화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탈레반이 과거보다 개방된 정치체로 변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아직 그들의 공언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국경으로 몰려드는 피란민들의 공포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에 유럽과 주변국들은 아프간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난민이 대량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난민 분산·보호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탈레반 정권은 과거와 같은 통치 행태를 되풀이하면 내부 반발은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과 고립을 자초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 속에 인류 보편적 가치인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반드시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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