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왜 뜬금없이 ‘친일’(親日)이 나도나”
[백세시대 / 세상읽기] “왜 뜬금없이 ‘친일’(親日)이 나도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9.03 14:13
  • 호수 7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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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장이 올해 광복절 기념식 축사에서 이승만·안익태를 친일 민족반역자로 몰아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전직 장관은 일제 항거를 상징하는 ‘죽창가’를 거론했다. 한 대선 예비후보는 “대한민국은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이어 간다”고 발언해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왜 유력인사들이 갑자기 ‘친일’이란 단어와 함께 과거의 암울했던 역사를 끄집어내 국민을 갈등·분열시키고 있나. 기자는 물론 노인 대부분이 그 배경을 잘 모른다. 이런 발언들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주사파의 발흥과 변천 과정, 북한과의 연계 동향, NL(민족해방·주사파)의 인맥을 알아봐야 한다.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운 주사파의 기원은 1980년대 중반의 학생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두환 정권 반대와 민주화를 내건 학생운동의 세력 일부가 ‘반미자주화’를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제시해 주도권을 장악했다. 단파 라디오로 청취한 북한의 대남방송 내용이 다음날이면 대학가 대자보에 붙였다. 

1987년 민주화가 됐고 소련이 붕괴되는 등 사회주의가 몰락했다. 이 시기에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뤄지면서 과격투쟁 노선을 이어가던 주사파는 대중의 이탈 등으로 세력을 잃었다.

주사파는 소멸하는 듯 했으나 1990년대 북한과의 연계 하에 결성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통한 통일운동으로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범민련은 '자주없이 통일없다'는 일관된 기치 아래 전민족의 단결된 힘으로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를 몰아내고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2000년대에는 노선을 전환해 진보정당과 노동현장을 급격히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분수령이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이다. 2001년 9월 충북 괴산군 군자산에 있는 한 연수원에 자주통일 활동가들이 모여 새로운 운동 노선을 채택한 것을 말한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은 “90년대 주사파들은 주로 전국연합이란 조직을 중심으로 한총련을 동원해 거리투쟁에 주력했다. 북한이 2000년 10월 노동당 창당 55주년 때 남측 민간단체 사람들을 초청했다. 이때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 안경호가 오종렬 전국의장을 만나 민노당에 가입하라고 요구했다. 2000년 이전 주사파의 모든 관심사는 범민련 가입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내부 논의가 종식되고 민노당 가입으로 방향을 튼다. 그 뒤 전국연합 지도부가 합의하고 마지막에 이를 결의하는 자리가 바로 군자산 모임이다. 주사파들이 수가 많아 나중에는 주사파가 민노당을 접수하게 됐다”고 기억했다.

이로써 국회의석 10석 가량을 차지하던 민노당을 통해 주사파가 제도권 내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 과정에서 민노당 내부에 큰 분란이 생겼고 이합집산의 과정을 겪고 지금과 같이 진보정당이 몇 갈래로 분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통진당 해산 당시 당원 8만명 중 상당수는 현 민주당으로 가고 나머지는 현 진보당과 정의당으로 흩어졌다. 주사파 활동가들이 군자산에서 채택한 결의는 ‘3년 안에 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해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이루자’는 내용이다. 물론 그 결의는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민경우 씨는 ‘다원성이 작동하는 우리 사회에 종북세력이 존재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위협이 안되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주체사상을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북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만으로 주사파의 정의를 한정하면 크게 위협은 안 될 것이다. 진짜 큰 문제는 지식인 사회와 정치권 등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부분들에 주사파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많이 퍼져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하고 세운 나라여서 처음부터 정통성이 없다는 식의 역사관은 북한정통론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 주사파의 역사관인데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 그런 사고가 사상의 자유를 넘어 국가의 존립을 흔드는 상황까지 가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글의 일부는 ‘주사파는 어떻게 진보정당을 접수하게 됐는가’(중앙일보 9월 1일자)에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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