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박물관 ‘사람, 숫자 :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 전, 1977년 서울엔 ‘불임’을 우대하는 아파트 있었다
역사박물관 ‘사람, 숫자 :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 전, 1977년 서울엔 ‘불임’을 우대하는 아파트 있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9.10 15:14
  • 호수 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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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계획 표어와 포스터, 인포그래픽 통해 우리나라 인구사 조명

인구총조사에 사용된 70년대 ‘천공카드 시스템’, ‘피임의 집’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재건축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이 아파트는 한때 ‘고자 아파트’로 불렸다. 1977년 우리나라에 청약제도가 처음 도입됐는데 우선 분양대상자에 ‘영구불임시술자’를 포함했다. 당시 정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생긴 이 우대방침이 처음으로 적용된 아파트가 바로 이 아파트였다. 현재 3인 이상 다자녀 가구에 주택 마련 우대 혜택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이처럼 시대별 인구변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되짚어 보는 전시가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21일까지 진행되는 ‘사람, 숫자 : 인구로 보는 한국 현대사’ 특별전에서는 가족계획 포스터, ‘가정의 벗’ 창간호 등 258건 300점의 자료를 총 4부로 구성해 숫자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먼저 1부 ‘사람 100’에서는 대한민국 인구지표를 100이라는 숫자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인포그래픽으로 한국과 유사한 면적과 인구를 가진 국가들과 비교해 우리나라 인구의 위치를 살피고 ‘대한민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가정하에 거주 형태, 통학 방식을 살펴 본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와 아이슬란드의 비교다. 현재 대한민국의 면적은 10만360㎢이고 인구수는 5178만명이다. 10만3000㎢로 우리보다 조금 넒은 면적을 가진 아이슬란드는 36만명밖에 살지 않는다. 면적이 33.88㎢인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사람이 65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어지는 2부 ‘인구폭발,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에서는 인구 총조사, 베이비붐 현상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에 제1회 총인구조사가 진행됐다. 1960년부터는 5년마다 ‘인구총조사’를 통해 최대한 정확한 인구 통계를 축적해 오고 있다. 조사 결과를 전산처리하는 데 사용한 각종 기기와 설문 답례품, 조사 항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특히 1970년대 사용된 ‘천공카드 시스템’이 눈길을 끈다. 오르간을 닮은 천공카드 시스템은 수집한 정보를 규칙에 따라 종이카드에 구멍을 뚫는 장치로 빠른 시간 안에 전산통계처리를 가능하게 했다.

정부는 1961년 해외 이주 정책을 추진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은 1962년 브라질 농업 이민이고 이후 정부 정책에 따라 다수의 국민들이 여러 나라로 떠나야 했다. 이보다 앞선 1954년부터 혼혈아와 전쟁고아의 해외입양이 추진됐다. 또 1970~80년대를 거치며 미혼모의 자녀들이 국외로 보내졌고 이를 통해 20만명의 아이들이 해외에 입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시에서는 각종 통계와 자료를 통해 인구정책의 그림자를 되돌아본다.

현재와 달리 어르신 세대는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남녀 차별 문제가 심각했다. 3부 ‘성비불균형,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는 1990년대 정점에 달했던 남아선호 문제와 이로 인해 촉발된 성비 불균형, 또 인구폭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시행했던 다양한 정책과 그 결과를 되돌아본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피임의 집’을 재현한 공간이다. 피임의 집은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전국 기초 자치 단위에 설치해 피임교육과 시술을 하는 공간이었다. 당시 ‘꽃신’(남성용), ‘진주’(여성용)라는 상표가 붙은 피임기구가 판매됐는데 ‘피임의 집’에서는 ‘남자는 꽃신, 여자는 진주’를 마치 표어처럼 붙여놓고 적극적으로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성비 불균형과 인구수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대별로 표어와 포스터를 제작해 적극 홍보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 ‘딸이 더 좋아’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표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1980년대 최고 축구스타 차범근 전 감독도 가족계획 홍보모델로 등장했다. 부인 오은미 씨, 어린 첫째 딸과 함께 단란하게 찍은 사진에는 ‘하나만 더 낳고 그만두겠어요’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차 전 감독은 실제로는 셋째까지 낳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애국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마지막 공간인 ‘고령화와 저출산, 백세시대,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저출산과 고령화 상황의 미래를 예측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문구가 움직이는 테이블을 설치해 인구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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