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57] 부처와 거지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57] 부처와 거지
  •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승인 2021.10.01 13:37
  • 호수 7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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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거지

걸인이 부처요, 부처가 걸인이니

처지를 바꾸어 공평히 보면 모두가 한 몸이라.

불상 아래 뜰 앞에서 사람들은 떠받드는데

걸인과 부처 중에 누가 진짜인 줄 알리오?

 

乞人如佛佛如人 (걸인여불불여인)

易地均看是一身 (역지균간시일신)

佛下庭前人上揭 (불하정전인상게)

乞人尊佛辨誰眞 (걸인존불변수진)

- 권섭(權燮, 1671~1759), 『옥소고(玉所稿) ․ 시(詩)』 13 「거지라고 업신여기지 말라[乞人不可慢視]」


(전략) 이 작품을 쓴 권섭(權燮, 1671~1759)은 본관이 안동이고, 자가 조원(調元)입니다. 호는 옥소(玉所)‧백취옹(百趣翁)‧무명옹(無名翁)‧천남거사(泉南居士) 등을 썼습니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였던 권상하(權尙夏)의 조카로, 19세 되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는 소두[疏頭 : 연명(連名)하여 올린 상소문에서 맨 먼저 이름을 적은 사람]가 되어 상소를 올리는 등 한때 시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으나, 송시열을 위시한 주변 인물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되는 참극을 겪은 뒤에는, 일체의 벼슬을 마다하고 전국 방방곡곡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보고 겪은 바를 창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조선후기 한시 쇄신을 이끈 백악시단의 일원으로 3000여 수의 한시는 물론, 75수나 되는 시조와 2편의 가사 작품도 지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제, 소재, 시어, 기법 면에서 대단히 참신하고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작품은 일곱 자, 네 줄로 이루어진 칠언절구입니다. 첫 번째 구에서 시인은 ‘걸인여불불여인(乞人如佛佛如人)’ 곧 걸인이 부처와 같고 부처가 걸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작심하고 시의 첫머리에 파격적인 언명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어 처지를 바꾸어[역지(易地)] 고르게 보면[균간(均看)] 부처나 걸인이나 한 몸[시일신(是一身)]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작가는 걸인의 구걸을 부처의 탁발과 겹쳐서 사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탁발은 부처가 세상에 있을 당시, 불법의 구현을 위해, 깨달음의 실천을 위해,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의 참여와 중생제도를 위해 행했던 수행의 한 가지입니다. 그런데 후대에 이 탁발은 구걸의 의미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이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시인과는 사뭇 다릅니다. 시적 정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부처가 모셔진 전각의 뜰 앞에서 연신 절을 올리며 부처를 떠받듭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부처에게 복을 빌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구걸을 하는 걸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처에게 절을 올리며 자기 복만 구할 뿐, 정작 한 줌의 쌀과 한 푼의 돈이 귀한 걸인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이 모습이 부조리한 것으로 비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구에서 뼈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걸인과 존귀한 부처 가운데 누가 과연 진짜일까?’하고 말입니다. (중략) 이 작품은 천한 걸인과 존귀한 부처라는 극단적 대비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와 가치, 나아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하략)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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