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세계보건기구의 ‘연령주의 보고서’에 주목하자 / 최성재
[백세시대 금요칼럼] 세계보건기구의 ‘연령주의 보고서’에 주목하자 / 최성재
  •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1.10.22 14:32
  • 호수 7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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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연령주의는 연령을 근거로 한

고정관념‧편견, 차별‧회피 가리켜

노인인권법을 제정하고

고용에서 연령차별을 금지하며

전 교육과정서 문제점 제기해야

금년 3월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확산되고 있는 연령주의(ageism)의 원인과 현황을 분석해 대책을 제시하는 글로벌 연령주의 보고서(Global Report on Ageism, ASEM노인인권정책센터에서 한글 번역본 발간)를 내놓았다. 이 사실을 정부에서 알고 있었을 텐데도 별다른 관심을 갖지 못한 것 같고, 피해 당사자일 수 있는 노인단체들도 모르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보고서에서 연령주의는 ‘연령을 근거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생각)이나 편견(편향된 감정)을 가지거나 차별‧회피하는 것(행동)’이라 한다. 다시 말해 연령주의는 연령을 기준으로 특정 사람에 대해 개인적 판단과 생각을 과장해서 일반화하거나, 편향된 감정을 가지거나 차별‧회피하는 태도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연령주의는 거의 전부가 부정적이고 과장·왜곡되고 비과학적이며, 나이 어린 사람들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 모두가 대상이 되지만 노인들이 가장 폭넓은 대상이 되고 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과 가치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 인정받는 기본적 권리를 말한다. 인권은 나이 많다는 이유로 결코 무시될 수 없다. 연령주의는 인권을 거스르고 파괴하는 아주 잘못된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다.

국가사회의 발전 정도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인권보장 정도로 판단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인권보장은 한 사회의 삶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된다. 경제발전 정도에서는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됐지만 인권보장, 특히 노인 인권보장이라는 면에서는 아직 선진국 대열에 서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연령주의는 시민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인권에 중대하고 폭넓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생명을 단축시키고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상태를 약화시키며, 인지능력을 손상시킨다. 또한 노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사회적 고립과 소외를 증가시키며,  폭력과 학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연령주의가 장애주의(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성차별주의와 결부되면 더욱 심각해져 장애 노인과 여성 노인은 연령주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연령주의는 제도적 차원, 대인관계 차원, 노인 자신 차원에서 나타나며 또한 이 세 가지 차원이 상호 연계되어 연령주의가 더욱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제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연령주의는 요양‧수발 서비스, 직장, 대중매체, 법률체계, 주거제도, 금융제도, 응급체계 등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인관계 차원에서 나타나는 연령주의자는 세계적으로 보면 2명 중 1명 정도이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연령주의 성향이 낮은 편이다. 효 사상과 집단주의적 전통이 강한 국가일수록 낮은 편이지만 특이하게 중국, 일본, 한국에서는 연령주의가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노인 자신 차원에서 나타나는 연령주의를 ‘자기지향 연령주의’라 하는데 노인 스스로 자신을 능력 없고 기억력과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건강도 나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현상은 심하지 않지만 상당수에서 나타나고 있다.  

연령주의는 국가에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가져온다. 연령주의(연령차별)로 인한 비자발적 퇴직, 이직 및 정년퇴직 등으로 소득이 상실된 고령자에게 소득보장 대책이 필요하고, 연령주의가 건강도 약화시키는 문제까지 고려하면 소득보장과 건강보장을 위한 국가 비용부담만 해도 연간 수십조원(수백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에 실제로 큰 부담을 가져오는 것은 고령화나 노인 인구 증가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연령주의라 할 수 있다. 

보고서에서 연령주의 대책을 크게 정책과 법률적 대책, 교육적 대책, 세대 간 대책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이 3가지 측면의 대책을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정책 및 법률적 대책은 노인인권법을 제정하고,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약칭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60세 이상의 정년 연장 계획과 정년제 폐지에 관한 중장기 계획 수립과 시행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교육적 대책은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과정 및 평생교육 과정에 고령화 사회 및 연령주의 문제점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세대 간 대책은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을 증진 시킬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널리 시행해야 한다.

연령주의야말로 고령화 사회 최대 적(敵)이다. 연령주의는 국가, 기업, 시민사회단체, 국민 개개인의 공동 노력으로 배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피할 수 없이 급속하게 다가오는 대한민국의 미래, 고령화 사회는 큰 재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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