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거짓 폭로의 해악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거짓 폭로의 해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11.05 13:52
  • 호수 7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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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 미국 담배 제조회사의 비밀 실험실에서 근무했던 빅터 디노블 박사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니코틴이 놀라울 정도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중독성은 헤로인, 코카인, 아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했고 이 ‘내부자 고발’을 계기로 세계 각국은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강도 높은 금연 정책을 펼치게 됐다. 

국내에서도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폭로 등 여러 용기 있는 사람들의 공익제보가 이어졌고 이를 통해 세상은 좀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여론 형성의 장이 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미투’ 폭로가 대표적이다. 성폭력 미투를 시작으로 빌려준 돈을 못 받았다는 ‘빚투’, ‘나도 학교폭력 피해자’였음을 고백한 ‘학폭 미투’가 연달아 터졌다. 공교롭게도 그 대상자는 대부분 ‘연예인’이었다. 

특히 성폭력 미투의 경우 파장이 컸다. 가해자로 지목된 모 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끓었고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탄 모 감독 또한 가랑비를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피신했다 코로나로 목숨을 잃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그중에는 허위 미투도 많았다. 문제는 허위 미투에 연루된 연예인 상당수가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 성폭력 가해자 취급을 받고 있다.

그 영향 때문일까. 계속되는 ‘빚투’와 ‘학폭 미투’엔 대중들은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단번에 믿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공교롭게도 ‘빚투’와 ‘학폭 미투’ 상당수는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폭로’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근 폭로의 순수성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대형 사건이 터진다. 드라마의 대성공으로 인기 고공행진을 구가하던 배우 김모 씨를 향한 전 여자친구의 ‘낙태 강요’ 폭로였다. 전 여자친구는 날 선 단어들로 신랄하게 그의 행태를 비판했고 얼마 후 김 씨가 사과하면서 이 폭로는 진실처럼 대중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제기한 주장이 대부분 거짓이었고 되레 전 여자친구의 부도덕함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김 씨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게 됐다.       

결국 거듭된 거짓 폭로는 주 대상자인 연예인을 향한 폭력이 됐다. 또한 ‘폭로’의 가치를 저해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폭로자=양치기 소년’이라는 이미지가 대중의 뇌리에 박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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