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몽유도원도를 보고 싶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몽유도원도를 보고 싶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11.05 13:59
  • 호수 7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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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근 전시를 끝낸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인터넷 예약이 안 돼 관람을 못한 이들의 불만이 많다. 이 전시에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왕제색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엄청난 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이다.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현재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걸려 있다. 지난 2009년 한국전시 때 덴리대 관계자가 ‘대여는 이번 뿐’이라고 해 앞으로 이 명작을 실제로 볼 기회가 있을 런지 모르겠다.

몽유도원도는 화가 안견이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부탁을 받고 그린 수묵담채화이다. 안평대군은 1447년 4월 20일, 집현전 학사인 박팽년과 함께 무릉도원을 노니는 황홀한 꿈을 꾼 뒤 꿈 내용을 전하며 그림으로 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안견은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했고 안평대군은 그림에 발문을 썼다. 안견은 조선 전기 도화원 화원이라고만 기록돼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몽유도원도는 가로, 세로가 106×38cm로 그림에 감명 받은 많은 관리와 학자들 21명이 쓴 찬문까지 붙이면 길이가 무려 20m에 달하는 대작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미술평론가들은 “조선의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한 작품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당연 몽유도원도”라고 입을 모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실제로 본 것은 아니나 인간의 욕망과 바람, 충의를 버무린 마음과 정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다”며 “정면과 측면, 부감법이 혼용된 다시점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독특하고, 그 화법은 근현대를 통틀어 서양보다 수백년 이상 앞선 시각예술기법”이라고 말했다.    

역사적 관점에서도 흥미를 끄는 작품이다. 그림에 찬문을 남긴 성삼문, 김종서, 박팽년 등이 수양대군에 의해 목숨을 잃어 ‘죽음을 부르는 그림’이라는 속설도 있다. 이들은 생전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냈고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들이다.

안평대군은 1418년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 태어났다. 총명한 데다 글과 그림에 능해 세종과 태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1453년 수양대군이 왕권을 차지하려고 일으킨 계유정난 때 독살 당했다. 

수양대군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안평대군을 시기해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배경 중 하나다. 안평대군을 죽인 후 수양대군은 안평대군의 죄목 25가지를 열거해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양어머니 성씨를 간통했다는 죄목이다. 

할아버지 태종은 양영·효령·충녕·성녕대군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성녕대군이 어린 나이에 죽자 손자 중에서 똑똑한 손자를 양자로 들여 주려 했다. 서열상 당연히 양자로 뽑혀야 할 수양대군 대신 안평대군이 성녕대군의 양자로 선택된 것이다.  

계유정난이 일어난 날 밤 안평대군은 양어머니 댁에서 묵었다. 수양대군의 부하들은 밤새 도성을 뒤진 끝에 성녕대군 군부인 댁에서 안평대군을 체포했다. 잠을 잤다는 이유만으로 간통했다고 뒤집어씌운 것이다.      

비극적인 역사가 스며있는 이 국보급 유산이 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간 걸까. 정설은 임진왜란 때 적장이 훔쳐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1947년 초대 국립박물관장이 일본에 갔을 때 구입이 가능했지만 당시로선 금액이 너무 커 포기했다. 서울의 기와집 서른 채 가격이었다고 한다. 이후 이승만 대통령에게 일본인 정객이 구입을 권유할 때는 가격이 더 올랐다. 재벌로 하여금 그림을 구입하려 했으나 그가 사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도 구입하려 애를 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의 비평가 겸 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는 문명을 창조했지만 침략자는 문화재를 약탈했다”고 말했다. 국가가 침략자로부터 하루 빨리 몽유도원도를 돌려받아 국보로 인정해 세계에 한국의 탁월한 예술성을 드높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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