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1] 함께라서 좋다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61] 함께라서 좋다
  • 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1.11.26 14:03
  • 호수 7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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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서 좋다

넘어가지 않던 밥도 마주 앉아 먹으니 한 술 더 먹게 되고, 

밍밍하던 시골 막걸리도 마실수록 맛나다.

少食輒防喉 (소식첩방후)  對案飯加匕 (대안반가비),

村醪薄無過 (촌료박무과)  屢觴覺轉美 (누상각전미).

- 이민구(李敏求, 1589〜1670), 『동주집(東州集)』4권 「희신랑래회(喜申郞來會)」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洲) 또는 관해도인(觀海道人)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수광(李睟光)의 아들이다. 진사시와 증광문과(增廣文科)에서 모두 장원한 실력자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뒤 36세의 나이로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영예를 누렸지만,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자 문책받아 평안북도 영변에 유배되었다. 영변에서 7년, 아산에서 3년의 유배 생활을 보낸 뒤 관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불우한 삶을 마치고 말았다.

인용한 글은 그가 유배객으로 영변에 머물 때 지은 시의 일부다. 제목은 ‘신 서방이 오니 좋구나’ 라는 의미다. 장인과 사위? 퍽 반가울 법한 사이도 아니고, 내심 반갑더라도 만면희색(滿面喜色)으로 좋아라 할 사이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친지와 가족을 떠나 객지에서 쓸쓸히 생활하는 유배객 신세라면?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사람은 누군가의 발소리만 들어도 기쁜 법이라는 장자(莊子)의 말처럼 더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앓아누웠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마중까지 나갔다. [久痾廢在床 走門便步屣] 혼자 먹을 때는 조금만 먹어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던 밥이 사위와 마주 앉아 먹으니 평소보다 많이 술술 잘 넘어가고, 밍밍하던 막걸리도 주거니 받거니 함께 마시노라니 맛나기만 하다. 이렇게 그는 반가운 마음을 생동감 있게 읊어 냈다. 사위가 속으로 흉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했던가? 나름 자부심과 포부를 지녔던 사람이 유배객 신세가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함께하는 즐거움을 저렇게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대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혼술’, ‘혼밥’이 등장하더니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왔다. 겨울에나 간혹 착용하던 마스크를 한여름에도 착용하고, 악수는 주먹 인사로 바뀌었다. 식사를 함께해도 한 그릇에 담긴 반찬을 서로 집어 먹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명절 귀향 자제를 당부하며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웃지 못할 말도 등장했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한지 몰랐던 일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잃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 회복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함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은근히 기대한다. 이런 불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함께라서 좋은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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