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혼밥은 건강을 해칩니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혼밥은 건강을 해칩니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1.12.10 15:14
  • 호수 79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혼밥’ 하는 사람들은

 영양 불균형에 우울감 높아져

 단골식당, 공공식당 이용하고

 연하 후배들과 사귐도 필요

 반려 동‧식물 키우는 것도 도움

오래전 내가 3년 반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할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집에서 혼자 저녁밥을 먹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약속이 없거나 혼자 외식하기 싫은 날은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는 데 무려 2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간편식이 별로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해야 했다. 부산하기만 하고 전혀 즐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소화제를 먹으며 신세 한탄한 적도 있었다. 이 처량한 기러기 아빠에게 혼밥은 고독, 우울, 짜증 등 온갖 부정적인 단어를 다 갖다 붙여도 될 만큼 회피 대상 1호가 되었다. 

얼마 전 TV에 혼밥먹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을 소개하면서 혼밥을 다른 사람의 신경을 안 쓰고 혼자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긴다는 식으로 미화하는 걸 보았는데, 나는 반대한다. 혼밥이 계속되면 신체 및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1인 가구여서 ‘혼밥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2016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혼밥족은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아 나트륨‧지방 과잉 섭취, 영양 불균형, 대사증후군 등의 문제를 보였다.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힘든 것은 노년기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된 경우이다.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으랴! 최근 부인과 사별한 내 친구는 “나는 저녁이 되면 시인이 돼”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별 후 애도를 거쳐 정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에 충격과 부정, 분노와 적개심, 죄책감, 소외감 등의 정서를 경험하는데 그 과정을 큰 어려움 없이 통과하는 데 식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즈음 부부끼리만 살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졌다. 자녀와 합치는 것도 쉽지 않다. 여가생활, 쇼핑, 잠자리를 포함한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허전하고 불편하지만 혼밥이 가장 어렵다는 호소를 많이 듣는다. 

식사는 배를 채우거나 영양을 섭취한다는 것 외에 살아있음을 즐기고 가족 및 지인들과의 행복한 교제 시간인데, 식사에서 이 의미가 제외됐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 요리 솜씨가 좀 있거나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체한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 쓸쓸함이 여성보다 더 크다. 

국내 65〜80세 중 1100명에 대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하루 세끼 모두 혼밥을 먹는 사람은 하루 한 끼 이상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사람에 비해 불안과 우울 수준이 약 2.4배 높았다.

독거노인의 혼밥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이런저런 충고들이 나와 있다. 친구를 많이 사귀라, 사회활동을 많이 하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라, 종교가 도움이 된다, 구청에서 하는 요리강습에 다녀봐라 등…. 여럿이 같이 식사하기 위한 좋은 방안들이긴 한데 생활방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노인들에게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혜 있는 노인들의 경험과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제안을 몇 가지 하려 한다.  

첫째, 동네 한두 군데 작은 식당을 단골로 정해 놓는다. 일반 식당에서는 나이 든 사람이 혼자 먹는 것이 좀 창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단골식당에서는 주인과 대화하면서 내 집에서 먹는 것처럼 편하고 자유스러울 수 있다.  

둘째, 복지관, 종교기관, 공공기관 등의 식당을 이용한다. 이런 곳은 메뉴도 자주 바뀌고 영양도 좋고 식대는 무료이거나 저렴하다. 어디 가면 무슨 요일에 괜찮은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요일별 스케줄을 짜놓는 것도 좋다. 나는 점심때 가끔 우리 동네 구청이나 한전의 직원식당을 이용한다.  

셋째, 가끔 돈을 좀 들여 고급 식당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식사한다. 만원 대와 삼사 만원 대의 식사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아까울 게 없다. 지인을 초대하여 같이 먹으면 기분을 상기시키고 자존감도 높아진다. 

넷째, 집에서 화초나 애완견을 기른다.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보다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정서적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그 생물에 물이나 먹이를 주면서 같이 살아가는 동료의식을 느낀다. 

다섯째, 10년 정도 연하의 후배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 정도의 나이 차이면 가치관이 비슷해 마음이 통하고, 그들과 진심으로 사귀었다면 내가 나중에 혼자 됐을 때 벗이자 위로자가 될 수 있다. 동년배 친구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줄 기력이 없을 것이다.  

여섯째, 공동식사가 가능한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이나 노인공동생활가정으로의 입주를 고려한다. 이런 시설에서는 언제나 하루 세끼 양질의 식사가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하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며,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노인주택은 이제 노인복지의 주요 이슈가 되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 ‘Love Myself’를 즐겨 따라 부른다. “I’m learning how to love myself(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배우자 사별 후 혼자서라도 즐겁고 감사하게 식사하면서 ‘나는 여전히 귀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게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