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올해의 노래·음식·인물’
[백세시대 / 세상읽기] ‘올해의 노래·음식·인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12.17 14:09
  • 호수 7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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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올해의 인물’로 전기자동차의 대명사 ‘테슬라’의 오너 일론 머스크를 선정해 실었다. 비트코인 시장이 이 사람의 말 한 마디로 휘청거렸으니 올해의 인물로 뽑힐 만하다. 기자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타임지(誌)를 흉내 내 ‘올해의 인물’, ‘올해의 음식’, ‘올해의 노래’를 선정해보았다.

▷올해의 노래는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이다. 기자는 매일 오후 걷기 운동을 하며 3절까지 있는 이 노래 전곡을 3~4회 부른다. 조선일보는 1934년 10월, OK레코드사와 공동으로 전국 6대 도시의 ‘애향가’ 가사를 공모했다. 3000여편의 응모작 중 문일석이란 무명시인이 쓴 이 노래 말이 당선작으로 뽑혔다. 

구구절절 음미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는 한편으로 애향심이 가득 밴 서정적인 노랫말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마음이 무거운 건 일제 식민 통치의 한과 서러움이 그대로 전해져서고, 고향 사랑을 느끼는 건 유달산, 삼학도, 영산강 등 사연 많은 목포의 유명한 지역을 짧은 문장에 잘 담아내서다. 과연 서울서 70년 가까이 산 기자는 ‘목포의 눈물’처럼 서울의 특징과 애향심을 잘 담아내는 노랫말을 쓸 수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대답은 회의적이다. 

2절의 첫줄 ‘300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를 부를 때는 목이 메기도 한다.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짚으로 노적봉을 감싸 멀리서 보면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많아 보이게 위장해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바위이다. 일제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레코드 사장은 기지를 발휘해 즉석에서 ‘삼백년을 연못 이름 ‘삼백연’(淵)으로, ‘원한 품은’을 원앙새의 ‘원앙 품은’으로 바꿔 검열을 통과하기도 했다. 

▷올해의 인물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의 박자연(86)할머니이다. 박 할머니는 본인 소유의 대지와 건물, 임야 등 전 재산 11억2000여만원을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이 중에는 미술소장품도 있다. 틈틈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 등 서예작품을 수집해 자기 집 전시공간에 소장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박 할머니는 젊은 시절 상경해 종로구에 경양식집을 운영하며 재산을 모았다. 이 식당에 이상희 전 내무부장관, 최열곤 전 서울시교육감, 이민우 신민당 총재, 김용철 전 대법원장 등 성주 출신 관료들이 찾아오곤 했다. 

박 할머니는 성주의 젊은이들이 상경하면 숙식을 제공하는 등 도움을 주었다. 최근에는 본인의 이름을 딴 ‘자연장학회’를 만들어 가천초·중학교의 입학생과 졸업생들에게 각 100만원씩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박 할머니가 내놓은 재산은 보통사람이 평생 구경하지 못하는 거액이다. 전 재산을 미련 없이 사회에 환원한 박 할머니의 희생정신과 고향을 아끼는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올해의 음식은 ‘양꼬치구이’다. 기자는 송년회를 서울 건국대 부근 양꼬치구이 골목의 한 식당에서 가졌다.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기자의 눈에 스테인리스로 만든 직사각형의 숯불화로가 눈에 들어왔다. 일렬로 홈이 파진 화로 위를 좌우로 왕래하는 덧판과 양고기를 꿴 기다란 꼬치 끝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회전하며 자동으로 고기가 구워졌다.

양고기는 냄새가 난다는 사람들의 말에 지금까지 입도 대지 않았는데 처음 맛본 양꼬치구이는 별미였다. ‘타코’ 같은 독특한 향내의 붉은 가루 ‘쯔란’에 고기를 찍어 한입 넣으면 안심스테이크처럼 보들보들하고 향이 풍부한 육즙이 배어나왔다. 앉은 자리에서 10여개의 양꼬치구이를 앙상한 ‘나무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올해의 음식, 인물, 노래를 고르기 위해 지난 1년여 다녔던 거리, 사람들과의 만남, 들었던 수많은 곡 등을 머리에 떠올리며 회상에 젖어보는 것도 건강에 좋을 듯하다. 그렇다고 없는 걸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끙끙댈 필요는 없다. 그것도 몸에 좋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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