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행운의 네 잎 클로버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행운의 네 잎 클로버 / 신은경
  •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 승인 2022.01.17 10:54
  • 호수 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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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이사 온 집 근처 둘레길을 걷다

 네 잎 클로버 발견하는 행운 경험

 하지만 흔한 세 잎 클로버도

‘행복’이라는 꽃말 지니고 있듯 

 일상의 행복에 감사하며 살 것

한 달 전 이사 온 아파트 단지는 언덕 비탈에 서 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언덕 맨 꼭대기여서 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다. 집 뒤로는 나지막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날이 춥고 눈이 와 아직 산에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곁으로 난 평평한 길은 날씨 상관없이 걷기에도 좋아 매일 산책하고 있다.

소나무 숲 둘레길 초입에 토끼풀이 무성히 자라서 널찍이 밭을 이루고 있다. 나이를 먹으나 젊으나, 혹시 네 잎 클로버는 없는지 먼저 관심이 갔다. 그렇다고 아예 자리 잡고 앉아 찾아보기도 민망해서 선 채로 휘하고 둘러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카메라가 클로즈업되듯이 확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네 잎짜리 같아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가서 보니 진짜 네 잎이었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이렇게 쉽게 눈에 띄다니.

자랑스럽게 뜯어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SNS에 올리며 수선을 피우고, 몇 사람에게는 만나 자랑삼아 이야기도 했다. 흥분해서 떠드는 내 말을 듣던 동네 이웃 한 분이 “그 풀밭에 유난히 네 잎 클로버가 많다”고 말했다. ‘엉? 그런 거야? 그렇다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네, 뭘.’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네 잎짜리 클로버 품종을 연구 개발해 대량으로 키워 팔고 있는 곳도 있다고 했다. 곧바로 검색해 보니 진짜 몇 년간의 연구 끝에 네 잎 클로버 다량생산에 성공해 제품으로도 팔고 있고, TV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희귀한 이파리를 찾으면 책갈피에 고이 간직해 말리거나, 다치지 않도록 코팅을 해서 귀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네 잎 보다는 세 잎 클로버의 꽃말에 더 관심이 간다. 

네 잎은 ‘행운’이지만, 세 잎은 ‘행복’이라고 한다. 희귀한 네 잎은 어쩌다 찾아오는 행운일지 모르나, 지천으로 깔려있는 세 잎짜리 클로버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행복은 우리 곁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매일 매일이 행복이고 매 순간이 행복인데 우리는 희귀하고 흔치 않은 행운을 찾아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가 저리도록 네 잎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사를 온 후 한 달 가량이 지났다. 처음엔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가지고 온 짐들을 어떻게 다 풀어 두어야 좋을지 몰라 머리를 싸맸다. 하지만 같은 용도에 쓰이는 물건들을 종류별로 각각 모으고, 작은 공간이라도 잘 접고, 잘 겹쳐 정리하다 보니 이제 꽤 제 자리를 찾아간다. 

부엌살림은 다 버리고 와서 오히려 빈 칸이 많아 신기할 정도다. 머그잔도 꼭 필요한 것 3개만 꺼내고 수저, 포크, 작은 스푼도 두 벌씩만 꺼내 놓으니 작은 서랍인데도 휑하다. 이사 오기까지 두 달 동안 모든 짐을 창고에 맡겨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장고 안의 식품들은 모두 다 없앨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빈 냉장고로 새살림을 시작했고, 휑한 냉장고가 주는 여유와 가벼움을 맘껏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어차피 살림이란 게 필요한 게 자꾸 생기고, 이것저것 사들이게 되어 날짜가 지날수록 자꾸 채워져 나가는 냉장고로 인해 스스로에게 다시 경고하고 있다. 비워두자.

앙증맞은 2인용 식탁을 준비해 요즘은 남편과 아주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한다. 남편은 이게 얼마만이냐고 기뻐한다. 빨래터도 바로 옆이고 부엌도 바로 한 발짝 옆이니, 빨래도, 음식 준비도 어려울 게 하나 없다.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으니 새해 무슨 대박이 나는 것 아니냐, 큰 행운이 찾아오는 것 아니냐 하는 축하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내 주변 일상에 널린 행복을 주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요즘은 눈 뜨면 감사하다. 오늘 하루 또 살아 내 힘으로 걷고, 아름다운 자연을 내다보고, 음식을 씹고 넘기는 이 하루를 선물로 받은 것에 감사한다. 귀한 가족과 손잡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희귀한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지천으로 널린 매일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감사하며 살려 한다. 

그날 토끼풀밭에서 발견한 네 잎 클로버는 두꺼운 책갈피에 고이 모셔두고 책장을 덮었다. 우연히, 그러나 반갑게 찾아온 행운은 그냥 감사하며 마음속에 모셔두기로 했다. 그리고 날마다 지천에 널린 행복을 발견해 나가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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