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작품보다 윤리의식이 중요해진 시대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작품보다 윤리의식이 중요해진 시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1.28 13:26
  • 호수 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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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1년 개봉한 ‘로아’ (ROAR)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다른 의미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됐다. 퇴마 의식을 다룬 공포물의 원조격인 ‘엑소시스트’의 프로듀서 노엘 마샬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이 유명한 건 사자 71마리, 호랑이 26마리 등 140여마리의 실제 맹수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안전장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 ‘스피드’(1994)를 연출한 촬영감독 얀 드봉은 머리를 다쳐 200여 바늘이나 꿔매야 했고 조연으로 출연한 멜라니 그리피스도 크게 다쳤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러한 비합리적인 사건이 촬영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촬영을 했고 그래서인지 맹수들의 잔혹함을 잘 보여준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국내‧외 영화계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핑계 삼은 비윤리적인 사건이 빈번히 발상했다. 대본에도 없던 노출을 현장에서 강요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며 폭언을 하는 등 배우의 인권을 짓밟았다. 2000년대 이후 이런 사례는 줄었지만 2019년 배우 A씨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에서 무리한 촬영 스케줄, 안전을 경시하는 연출로 고통을 겪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동물 학대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5년 만에 부활시킨 전통 대하사극으로 방영 전부터 큰 관심을 모은 이 작품은 준수한 시청률로 출발했다. 하지만 ‘고의 낙마’ 사건이 발생하며 방영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해당 사건은 이성계의 낙마 장면이 방영되면서 촉발됐다. 동물권단체에서는 이를 보고 “명백한 동물학대”라고 비판하며 말의 생존 여부 확인과 촬영 현장에서의 동물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 마련을 요구했다. 헌데 실제로 해당 장면을 촬영하면서 달리던 말을 강제로 넘어뜨렸고 이 과정에서 말이 바닥에 심하게 고꾸라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또한 해당 말이 촬영 일주일 후 죽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KBS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동물권단체는  2012년 ‘각시탈’, 2014년 ‘정도전’, 지난해 연말 인기를 끌었던 ‘연모’ 등 상당수 사극에서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공개하며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했다. 농식품부도 1월 25일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영상 및 미디어 촬영에 출연하는 동물에 대한 보호·복지 제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강도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이 선을 넘어가면 여론은 과감히 철퇴를 내린다. 그렇다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상식’만 지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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