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전, 산신도부터 수호랑까지… 우리 문화에 깃든 ‘호랑이’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전, 산신도부터 수호랑까지… 우리 문화에 깃든 ‘호랑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1.28 14:36
  • 호수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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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각종 유물을 통해 우리 문화 속 호랑이의 상징성을 살펴본다. 사진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소개된 ‘작호도’ 등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각종 유물을 통해 우리 문화 속 호랑이의 상징성을 살펴본다. 사진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소개된 ‘작호도’ 등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호랑이의 상징적인 의미 잘 보여주는 ‘맹호도’ 등 유물‧영상 70여점 

벽사 의미 담은 ‘삼재부적판’, ‘강사리 범굿’ 슬라이드쇼 사진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월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조선시대에 혼례를 마친 신부가 시댁에 갈 때 타던 가마 사인교(四人轎)가 전시돼 있었다. 헌데 가마 위에는 독특한 담요가 하나 덮여있었다. 호피담(虎皮毯)이라 불리는 가마덮개였다. 

액(厄)을 막기 위한 덮개로 실제 범가죽을 사용했다가 한반도의 호랑이가 사라지면서 그림이 그려진 담요로 대체됐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동물 이상의 존재로 여겨져 왔다.

임인년 새해를 맞아 한국 문화에 녹아 있는 호랑이 관련 상징과 문화상을 조명하는 전시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3월 1일까지 진행되는 ‘호랑이 나라’ 특별전에서는 1부 ‘십이지와 호랑이 띠’ 2부 ‘호랑이 상징과 문화상’, 3부 ‘호랑이의 현대적 전승’으로 구성해 ‘맹호도’를 비롯한 유물과 영상 70여점을 선보인다.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인과 호랑이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은 1894년부터 4년간 조선을 답사한 후 발간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8)에서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또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1000건 이상의 설화를, ‘조선왕조실록’에선 700건 이상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이가 한국인들과 함께했다는 증거이다. 

이 과정에서 호랑이는 우리 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는다. 산신(山神), 산군(山君), 산신령(山神靈) 등으로 불리며 신으로 섬기기도 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에서 썼던 ‘산신도(山神圖)’와 민속학자 송석하(1904~1948)가 일제강점기에 수집한 ‘산신도‧산신당(山神堂) 흑백 사진’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져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여졌다. 새해 첫날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는 세화(歲畫), 단오에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드는 애호(艾虎) 등은 모두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고자 했던 풍속이었다. 한양의 세시풍속을 월별로 정리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는 이러한 세화와 애호의 풍속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재를 막기 위해 호랑이와 매를 새겨 만든 ‘삼재부적판(三災符籍板)’, ‘작호도(鵲虎圖)’ 등도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댔던 흔적을 보여준다. 작호도에는 주로 호랑이와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그렸는데 호랑이는 벽사와 보은을, 소나무는 장수, 까치는 기쁨을 상징한다. 호랑이를 타고 있는 인형도 이색적이다.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으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며 망자를 저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범굿’을 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한국의 굿’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수남(1949~2006)이 1981년에 촬영한 ‘강사리 범굿’의 사진을 슬라이드 쇼 형태로 소개한다. 

강사리 범굿은 닭을 잡아먹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범을 한편으로는 총으로 쏘아 잡는 시늉을 하며 겁을 주고, 한편으로는 범이 좋아하는 소머리를 고추밭에 묻어 범이 가져가도록 달래는 강온 양면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범 무늬 탈을 쓰고 옷을 입은 남자 무당과 이를 잡기 위해 포수로 분장한 남자 무당이 벌이는 연극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88서울올림픽, 평창동계올림픽 등 국제적 스포츠 행사에서 호랑이는 대회 마스코트로 활용됐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유니폼에는 호랑이가 엠블럼 형태로 부착돼 있기도 하다. 전시에서는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을 비롯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 축구공’, ‘남아공 월드컵 기념 티셔츠’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위상을 떨치는 호랑이를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호랑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며 “임인년 새해에는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 온 국민이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가내 평안함을 누릴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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