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시간이라는 자산
여가시간이라는 자산
  • 관리자
  • 승인 2009.03.27 14:04
  • 호수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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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서경석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
인생은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누구나 거치게 되고 각 시기별로 해야 할 과제가 구분돼 있다. 아동기는 잘 양육돼야 하는 시기고, 청소년기는 여러 학문을 배워야 하는 시기며, 장년기는 가정과 사회적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하는 시기다.

그러나 노년기는 뚜렷한 과제가 정해지지 않은 시기다. 그래서 남은 인생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뚜렷한 과제가 없는 시기이니 모든 시간이 여가시간이 된다. 노인에게 가진 것은 시간뿐이라고 하는데, 가진 것이니까 분명 자산이다. 문제는 여가시간이라는 자산이 얼마나 유용하고 가치 있냐는 것이다. 가치는 시간자체가 가진 것이 아니고 가치를 갖도록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어사전에 ‘여가’는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으로 정의돼 있다. 정말 일이 없어서 한가한 시간이면 부정적이지만, 일은 있지만 한가한 시간을 만든 것도 여가며 이 여가는 매우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일이 많은 시기에는 여가를 내기가 매우 어려우며 이러한 시간을 갈망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가시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며 자산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소중했던 자산이 노년기가 돼서 한보따리 안겨 진 셈이다. 무엇이든지 희소가치가 있는 법인데, 갑자기 많아진 여가시간은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노인에게 주어진 여가시간을 잘 관리하고 사용한다면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을 할 수 있다면 여가선용과 소득창출, 건강관리의 일석삼조여서 더 없이 좋다. 하지만 노년이 돼서 일자리 갖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가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취미생활과 봉사활동, 그리고 ‘배우는 것’이 있다.

취미생활은 여가선용의 좋은 방법이며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노년에 보람을 갖고 사회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그 보다도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배우는 것’이다.

자연만물이 성장하고 변화할 때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성장이 멈추면 죽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체적인 성장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정서적·학문적 성장은 제한이 없다. 성장을 위해서는 바로 배우는 것을 해야 한다.

노년의 배움은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한 힘을 지닌다. 희망을 갖게 하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하며 사회변화에도 잘 적응하는 한편 지속적인 배움으로 새로운 전문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노년세대는 과거 생활환경이 어려웠고 생계를 위해 일에 매달려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설사 알았다고 해도 그 분야를 접하거나 재능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웠다.

이제 일을 내려놓은 노년기에는 노년에 얻은 여가시간을 새롭게 배우는 일에 쏟으면 좋을 듯하다. 얼마 전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에 80세가 되신 할머니께서 드럼을 배우고 즐기는 모습이 방영됐다. 우연히 드럼에 관심이 있어 해보니 참으로 재능이 있어 빨리 배우고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더 빨리 재능을 발견하고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노년기에는 후회하지 말고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이라도 즐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면 된다.

어떤 분은 서예에 입문해 10년 후에 개인전을 열겠다며 열심히 배우고 연습하고 계시다. 하기 나름이지만 무엇이든지 10년이면 아마추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한 노인복지관에서 시니어실내앙상블 단원을 모집하자 많은 분들이 바이올린, 첼로, 플룻,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를 들고 응모, 취업하려는 젊은이들 못지않은 기대와 긴장감을 보여주셨다. 이 악단의 목적은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면서 새롭게 배우고, 다른 곳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노년기가 30년까지 길어졌다. 노년기에 무엇이든지 새롭게 시작해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흔히 ‘내가 지금 배워서 뭐해, 너무 늦었어, 쓸모가 있어야지’라면서 시작도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다. 노년기 배움의 목적을 배운 것을 써 먹기 위한 것이란 생각을 가진다면 머지않아 실망하거나 실패한다. 배우는 생활 자체를 즐기고 의미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도전하는 분에게는 소중한 시간이고, 포기하고 지내는 분에게는 여가시간이 오히려 불행처럼 여겨진다.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여가시간은 분명히 자산이지만 목표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짐이 된다.

노인복지는 노년의 삶의 행복을 갖도록 돕는 사회적 제도와 지원을 말한다. 노인의 여가활동은 개인의 책임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책임도 크다. 지금 우리나라는 노인의 역할이 주어지지 않고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여가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는 것과 여건조성을 위한 비용 지원도 필요하다.

노인의 여가는 개인의 자산이면서, 잘 활용하면 좋은 노년문화를 만들어 국가의 자산이 될 수 있어 세심한 관심으로 좋은 정책과 프로그램 개발도 활성화돼야 한다. 선진 노인복지국가가 되려면 노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데, 노년의 행복은 노인의 여가시간이란 자원을 선용할 때 얻을 수 있다. 노인여가의 자산이 노년의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중히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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