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3] 한자 색명, 한글로 바꿀 때 뉘앙스 잘 못살려
[한국의전통色이야기 3] 한자 색명, 한글로 바꿀 때 뉘앙스 잘 못살려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2.03.14 10:47
  • 호수 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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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색명이란 『삼국사기』에서 『승정원일기』까지 정통 한국사 사료(원본)에 색채의 의미로 사용된 한자(漢字)로 기록된 색명을 가리킨다. 

한자 색명은 한자로 조합된 색명으로서 정통 한국사에 없는 색명이다. 한자로 구성되는 색명은 두 글자이상의 색명이 많다. 이 때 앞의 글자는 형용사 색명으로서 본색명인 그 다음 글자를 수식한다. 영어 색명도 동일하다(예: yellowish green). 

한자 색명이 전통색명 될 순 없어

그러나 한자 색명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예를 들면, 암적(暗赤), 담자(淡紫), 회청(灰靑), 회흑색(灰黑色), 녹갈색(綠褐色), 담갈색(淡褐色), 암다갈색(暗茶褐色), 담담녹청색(淡淡綠靑色), 유백색(乳白色), 담록회색(淡綠灰色), 담회록색(淡灰綠色), 회황(灰黃), 회청백색(灰靑白色), 암록청색(暗綠靑色), 다홍(茶紅), 수홍(水紅), 행자색(杏紫色), 포도청(葡萄靑), 흑유색(黑幼色), 자주(紫朱) 등으로서 한국사에 없는 색명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도자기, 칠공예, 서화 등의 색깔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색의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에 한글보다 한자로 조합한 색명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거나 또는 한문에 더 익숙했던 연구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자색명은 한글전용 시대 이전에 학계에서 또는 출판물에서 통용되었고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한글로 음역한 색명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 사례를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지 개인적으로, 또는 상업적(그림물감 회사)으로 이러한 색명이 사용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바람직하지는 않음), 이러한 한자 색명을 전통색명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에 기록된 전통색명은 불변하는 역사기록이다. 그러나 시중에 번역된 한국사 출판물에는 멋대로 국역(國譯)되어 있으니 1145년 『삼국사기』 이후 1910년 조선시대까지 한국사에 기록된 전통색명의 색이 어떤 색인지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역사학자들이 전통색명의 미묘한 뉘앙스를 번역하기 어렵다면 학제적 연구를 통해서 주석(註釋)을 붙여서라도 그 때의 지식인들이 지각했던 색명의 색깔을 알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한다.

영의정, 좌의정, 대사헌, 오사모(烏紗帽), 소복(素服) 등은 그대로 음역(音譯)하면서 대부분의 색명은 상투적인 색명으로 번역한다. 

색 고증에 더 정성을 기울였으면

예를 들어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婆娑石塔) 중의 ‘비범(緋帆)천기(茜旗)’는 시중의 번역본에 모두 똑같이 붉은 돛, 붉은 깃발로 번역되어있다. 돛(帆)의 붉은 색과 배에 꽂아 펄럭이는 깃발(旗)의 붉은 색을 구별하지 않아도 역사(국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국사책에 기록된 전통색명의 국역도 마찬가지이다. 

언젠가 TV사극 드라마(역사 고증이 부실한 오락프로일 뿐이지만)의 대사 중에 미색(米色: 쌀의 색)이 나오는데 자막에 그 색명의 해설을 붙이는 성실함을 보였다. 이때의 미색(米色)은 실록에는 ‘실제 쌀의 색’과 ‘아주 엷은 노란 비단색명’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잠깐 보인 미색(米色) 비단의 색이 실제로 그 당시의 미색(米色) 비단의 색과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전통색 연구의 한 부분이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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