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젊은이들만 부킹하나 우리도 한다”
[르포] “젊은이들만 부킹하나 우리도 한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4.02 13:31
  • 호수 1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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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어르신 전용 라이브 카페 ‘로맨스파파’
원로가수· 원로개그맨 등 매일 출연… 新노인공간 자리

▲ 로맨스파파를 찾은 어르신들이 모창가수 너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월 31일 늦은 오후 서울 종로 3가 국일관 2층 어르신 전용 라이브 카페 ‘로맨스파파’. 카페 안에는 50여명의 손님들이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 늦은 점심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후 4시쯤 모창가수 너훈아가 무대에 오르자 관객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 첫 곡은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 모창가수 너훈아는 나훈아와 비슷한 외모와 화려한 무대 매너로 손님들을 사로잡았다. 나훈아 특유의 표정과 손동작이 나오자 “진짜 나훈아 아냐?” “어쩜 저렇게 닮았어” “가짜면 어때? 노래만 잘하면 됐지” 등 품평이 쏟아진다. 곧이어 흥겨운 멜로디가 흐르자 어르신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몇몇 어르신들은 직접 무대 앞 스테이지에 나와 댄스 삼매경에 빠진다.

나훈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창가수 너훈아씨는 “젊은이 못지않은 어르신들의 열정적인 반응에 무대에 오르면 흥이 절로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일 문을 연 로맨스파파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르신 전용 라이브 카페다. 상호명인 로맨스파파는 19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추억의 영화 ‘로맨스빠빠’에서 착안했다.

어르신 전용 카페답게 젊은이들은 출입금지다. 55세 이상 어르신들만 출입할 수 있다. 젊다 싶으면 바로 ‘민증’ 검열에 들어간다. 카페가 문을 연 초기에는 '로맨스파파'라는 간판만 보고 찾아온 젊은이들이 '검열'을 받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 로맨스파파 입구에 실버전용 라이브 카페라는 문구가 세겨진 입간판이 눈길을 끈다.
문을 연지 3개월 남짓,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 평균 600~700명의 어르신들이 찾는다. 주말에는 800여명이 찾아와 991m²(300평)규모의 카페를 가득 채운다.

이곳이 주목받는 이유는 노인전용 카페라는 타이틀뿐만이 아니라 왕년에 ‘한가닥’ 했던 원로가수와 원로 개그맨 등 9명이 매일 출연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면 ‘추풍령’을 부른 남상규, ‘전화통신’ 남백송·복수미, 모창가수 너훈아,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의 박 건, 코미디언 홍해·남춘 등 1960년대 유명 원로가수 및 코미디언 등의 공연을 매일 볼 수 있다.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다행이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어르신들을 배려해 음식도 저렴하게 판매한다. 주류 3000원, 안주 8000원부터다. 식사는 어르신들이 즐기는 떡국을 비롯해 불고기, 생선구이, 돈가스 등 모든 비용을 6000원으로 통일했다.

김동욱 대표(60)는 “어르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음식과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며 “그러다보니 간혹 공연비를 추가로 받지 않느냐 문의가 쏟아질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 이용객은 70%가 단골이다. 부부모임, 동창회 뿐 아니라 홀로된 어르신들끼리 삼삼오오 찾아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즉석 미팅인 ‘부킹’도 이뤄진다.

일주일에 두 서너 번씩 로맨스파파를 찾는다는 단골 김정식(64·서울 강남구)씨는 “종로는 우리세대들의 추억의 공간”이라며 “노인들만의 공간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런 공간이 마련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 12시부터 문을 여는 이곳은 전철 막차가 끊기는 오후 11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늦은 새벽까지 영업하는 기존 라이브 카페와는 차별된다. 손님 대다수가 전철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1·3·5호선 3개 노선의 전철 환승역인 종로3가에 위치해 있다보니 서울은 물론 아산, 천안, 의정부 등 먼 지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김동욱 대표는 “9년 전 서초동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던 중 어르신들만의 카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 이 카페를 개점했다”며 “카페를 찾는 어르신들이 노인들의 공간을 만들어줘 고맙다고 말할 때 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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