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 봄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진 본처 뒤에서
첩살이는 이제 막 핀 한 떨기 꽃이네
산수유가 피기 시작했다. 작년에 미처 거두지 못한 열매 아직인데 서둘러 온 봄이 가지 끝에서 눈이 부시다. 이제는 늙어 보잘 것 없는 본처와 등 뒤에서 만개한 꽃 같은 첩살이가 웃고 있는 환장할 이 봄날, 너무 눈이 부셔서 오히려 슬프다.
어디에선가는 다시 봄을 맞이해서 너무나 좋다고 할 사람이 있고, 또 어딘가에선 하루 또 하루 살아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모든 이에게 온 봄날이지만 마음 편히 맞이할 수 없는 이 환장할 봄날.
꽃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다. 봄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어야 비로소 봄인 것이다. 미세먼지와 황사와 코로나로 한 치 앞을 희망하기 어려운 이 봄날이 진정 따뜻한 체온을 서로 나누며 환한 웃음을 천지사방에 꽃잎처럼 흩날릴 수 있기를.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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