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잘난 척 하지 마라’는 내면의 소리 / 신은경
[백세시대 금요칼럼] ‘잘난 척 하지 마라’는 내면의 소리 / 신은경
  •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 승인 2022.03.28 10:18
  • 호수 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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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신은경 전 KBS 아나운서

상대에게 잔소리하거나

핀잔주고 비난‧비판하는 건

모두 교만에서 시작

이해하고 입장을 바꿔보면,

무엇보다 감사하면, 겸손해져

97세가 된 할아버지가 식사 중 실수로 음식을 흘리니 93세 아내가 잔소리를 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당신도 내 나이 되어 봐, 안 그런가….”

오래전 친정엄마는 손주 한 명의 이름을 부르려면 이 집 저 집 아이들 이름을 한 바퀴 다 부른 후에야 그의 바른 이름을 찾아내곤 하셨다.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던 나도 이제 제일 어려운 게 사람 이름 기억해 내는 일이다. 이름 석 자 중 한 글자만 생각나 쩔쩔매면 남편이 나머지 이름을 완성해 주는 일이 적잖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불평하고, 지적하고, 잔소리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불평이 나오려고 하면 즉각 스스로에게 말한다. ‘잘난 척 하지 마라.’

배우자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즉각 잔소리를 하고는 곧 반성하고 속으로 말한다. ‘잘난 척 하지 마라.’ 성경의 잠언에 보면 잔소리하는 아내와 사느니 차라리 광야에서 움막을 짓고 혼자 사는 게 낫다고 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져 잔소리가 나오려는 순간 빨리 입을 다물고 속으로 말한다. ‘잘난 척 하지 마라. 너도 그럴 때가 있지 않느냐.’

방송쟁이였던 내겐 아직도 직업병이 있다. 방송 출연자가 주어 동사가 맞지 않는 비문을 말하거나, 어법에 안 맞는 표현을 하거나, 띄어 읽을 곳을 잘못 읽어 의미가 다르게 들리거나 하면 곧바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지적질을 하기 전에 먼저 사전부터 찾아본다. 예전엔 틀린던 표현도 이젠 허용된 어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장면’도 맞고, ‘짜장면’도 맞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우리말의 맞춤법도 많이 바뀐 것을 확인한다. 또 속으로 말한다. ‘네 직업이 말하기였다고 잘난 척 하지 마라.’

이해하고 입장을 바꿔보면 비난하거나 불평할 수가 없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거나, 큰 소리로 동영상을 틀고 듣는 사람을 보면 영락없이 나이든 어르신이다. 처음엔 깜짝 놀라 젊은이들이 얼마나 흉을 볼까 조바심냈으나,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청력이 옛날 같지 않으니 점점 말소리가 커지는 것이고, 보고 싶은 동영상이 있는데 이어폰 사용이 여의치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날마다 집 밖으로 나와 카페에서 글 쓰는 작업을 하는 후배가 있다. 이유를 물으니 TV를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놓으시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에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때는 불효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간다. 이해를 하니 겸손해진다.

상대에게 화가 나거나 핀잔을 주거나, 불평·불만을 하거나, 상대방을 비난·비판을 하는 것은 모두 교만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나는 이만큼 훌륭한데, 너는 왜 그러냐, 왜 잘하지 못하느냐는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뽑는 선거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모두 상처받았다. 올바른 판단을 위한 지적은 상대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릴 뿐이었고, 비판과 지적은 저주에 가까웠다. 선거에 나선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 전체가 대결에 나섰다.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상대편을 지지하는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서로 원한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데릭 프린스 박사는 그의 책 ‘교만과 겸손’에서 지도자에게 겸손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하며 겸손은 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부분이라 말했다. 올라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이고,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이라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겸손해 지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겸손을 위한 좋은 도구는 바로 감사이다. 감사하면 교만해지지 않는다. 창궐하는 전염병으로 몇 날 며칠 고생하고 난 지인은 겸손하게 고백했다. 지금까지 숨 쉬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활발하게 움직였던 날들이 결코 내 힘이 아니었다고 감사했다. 겸손히 나를 낮추고 찾아오는 것은 평안과 감사와 기쁨이다. 결국 겸손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나의 평안을 위한 것이다.

요즘, 겸손과 교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다가 보니, 오늘은 나에 대한 반성문을 쓰게 됐다. 이제 복음서의 한 구절로 나의 반성문의 결론을 내리려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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