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고령화시대, 부모 돌봄 문제 정면으로 다룬 수작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고령화시대, 부모 돌봄 문제 정면으로 다룬 수작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4.04 13:32
  • 호수 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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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홀몸 노인 돌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 사회가 나야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은 극중 ‘말임’(왼쪽)과 요양보호사 ‘미선’의 모습.
이번 작품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홀몸 노인 돌봄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 사회가 나야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은 극중 ‘말임’(왼쪽)과 요양보호사 ‘미선’의 모습.

김영옥, 65년 연기 인생 첫 주연작… 산전수전 겪은 어머니역 열연

요양보호사 명암과 필요성도 제시… 박성연‧김영민 등 호연 돋보여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대구의 한 평범한 가정집. 설날을 맞아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다. 집주인 ‘말임’ 여사와 그의 아들 ‘종욱’의 가족, 그리고 평소 말임을 돌봐주던 요양보호사 ‘미선’까지 함께 전을 굽고 제사를 지내며 명절 분위기를 낸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였다. 말임은 다시는 찾아 오지 말라며 성을 내고, 며느리 ‘유진’은 이혼을 운운하며 펑펑 운다. 그 사이에 낀 ‘종욱’이 안절부절 못하던 그때 ‘미선’의 수상한 행각이 포착된다. 이는 도화선이 됐고 결국 가장 행복해야 할 명절은 최악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 사회에서 병든 부모를 어떻게 돌보는 것이 맞는가를 따뜻한 시선으로 묻는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가 4월 13일 개봉한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통해 재조명 받고 있는 김영옥이 65년 연기 인생 첫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직장과 육아 때문에 서울에 사는 ‘종욱’(김영민 분)이 혼자 사는 80대 ‘말임’(김영옥 분)을 깜짝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종욱은 형광등을 비롯해 각종 공구를 챙겨가 말임의 집 구석구석을 고치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미안함을 덜려고 했다.

말임은 겉으로는 오지 말라며 투덜거렸지만 속마음은 신이 났는지 불고기를 비롯한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준비한다. 또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집에 입주한 미용실의 빨래를 대신 걷어다 주려다 화가 발생한다. 계단에서 굴러 한쪽 팔을 크게 다친 것.

1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새로운 외국계 회사 입사를 앞둔 종욱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말임이 혼자서 거동을 못하게 된 상황에서 해외에 나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종욱은 나을 때까지만 서울의 집에서 함께 살자 제안하지만 말임은 자신의 집이 가장 편하다면서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궁여지책으로 종욱은 사비를 들여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 분)을 고용한다. 미선은 능청스럽게 미소를 짓고 다니지만 병원에 입원한 홀어머니 병원비를 혼자 마련하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사는 집도 없이 병원에서 지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려 말임의 집에서 반찬을 몰래 훔쳐가기도 하고 이를 알아챈 말임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말임과 미선의 불안한 동행은 이어진다. 종욱도 틈틈이 대구집을 찾아 말임을 살핀다. 하지만 적금까지 깨며 어머니 요양비를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감정의 골이 서서히 깊어진다. 그러다 명절 모임에 갈등이 폭발하고 세 사람의 관계 역시 위태해진다.

이번 작품은 그간 잘 다루지 않았던 ‘홀몸노인 돌봄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과거 우리나라는 노쇠한 부모를 자식들이 모시는 걸 당연시했다. 그 당시에는 자식을 많이 낳아 자식끼리 갹출해서 돌보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는 다르다. 작품 속 ‘종욱’과 ‘미선’처럼 혼자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 더해 맞벌이를 하며 자식을 돌봐야 하고 주택자금도 갚아 나가야 한다. 

실제로 부모가 쓰러져 병원비 등을 대다 경제적으로 휘청거리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등한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 있는 ‘종욱’과 달리 이미 어머니 부양에 전 재산을 쓴 ‘미선’의 행보는 그래서 더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이와 함께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각종 논란이 발생하고 있는 ‘요양보호사’ 문제도 다룬다. 감정노동자인 요양보호사는 박봉을 받으면서도 각종 갑질에 시달린다. 반대로 가해자가 돼 어르신의 재산을 훔치는 사건도 빈번히 발생한다. 작품은 ‘미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요양보호사의 명암을 그리면서도 결국 따뜻한 시선으로 자식을 대신해 자식의 역할을 해주는 필요한 존재로 묘사한다. 

배우들의 호연이 눈부시다. ‘국민 엄마’라 불리는 김영옥은 수십 년간 산전수전을 겪어 겉으로 억센 척하지만 속은 여린 우리 시대 어머니상을 완벽히 보여준다. 인위적으로 가공된 대사가 아닌 자식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대사를 그녀 특유의 거센 톤으로 연기하며 ‘말임’이라는 캐릭터에 빠져들게 한다. ‘디바’, ‘82년생 김지영’ 등을 통해 얼굴을 알린 박성연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실제 요양보호사인 듯 완벽한 생활연기를 통해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보탠다. 김영민도 투덜거리면서도 서울-대구를 끊임없이 오가는 심성 고운 아들 ‘종욱’ 역을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한 번은 봐야 할 작품이다. 특히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있다면 손을 붙잡고 꼭 극장에 찾아가야 한다. 비록 극장을 나설 때 마음이 불편하고 정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겪어야 할 현실을 미리 대비하는 마음으로 꼭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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