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노실의 천사’ 전…근대 미술에 큰 족적 ‘천재 조각가’ 권진규 재조명
서울시립미술관 ‘노실의 천사’ 전…근대 미술에 큰 족적 ‘천재 조각가’ 권진규 재조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4.04 13:34
  • 호수 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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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생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비운의 천재 조각가’라 불리는 권진규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전시에 출품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자소상’,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으로 유명한 ‘말’의 모습(왼쪽부터 순서대로).
이번 전시에서는 생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해 ‘비운의 천재 조각가’라 불리는 권진규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전시에 출품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자소상’,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으로 유명한 ‘말’의 모습(왼쪽부터 순서대로).

삼베 질감 살린 ‘건칠’ 작업 등 독창적 세계 구축…  조각 등 240여점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한 작품 ‘말’, ‘가사를 걸친 자소상’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에 화장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하여 천사처럼 나타나는 실존을 나는 어루만진다.”조각가 권진규(1922~1973)가 1972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시 ‘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노실(爐室)’은 ‘화로가 있는 방’이라는 뜻으로 작업실을 의미한다. 하지만 1년 뒤 그의 ‘노실’은 더 이상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가 떠난 후에야 그의 작품들은 재평가를 받았고 ‘한국 근현대조각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다.

조각가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예술세계를 회고하는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5월 22일까지 진행되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전에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 회화, 드로잉과 아카이브 등 총 24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 멤버 RM이 소장한 ‘말’(1965년작 추정)도 포함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권진규는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등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힌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1947년 이쾌대가 개설한 성북회화연구소에 들어가 미술을 배웠다. 1949년에는 일본 도쿄 명문 무사시노(武藏野)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했고 일본 최고의 공모전 중 하나인 ‘니카전(二科展, 1953)’에서 ‘기사’(騎士) 등 3점을 출품해 특대상을 받았다. 

1959년 국내로 돌아온 후에도 권진규는 전통적인 삼베로 거친 재질을 살리되 내부가 비어있는 건칠 조각을 선보이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하지만 사회적 평가는 냉담했고 연이어 해외전시, 동상제작 일들이 무산되며 그는 좌절에 빠진다. 그러다 1973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한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작업실로 돌아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작품에서 추구한 것은 영혼과 영원성이었다. 또한 불교적 세계관이 작품 면면에 녹아들어가 있다.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종래에는 이를 모두 무화(無化)하는 작품이 그의 지향점이었다.

전시는 이러한 그의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해 1947년부터 1958년까지 작품을 전시하는 ‘입산(入山)’, 1959년부터 1968년까지 작품을 선보이는 ‘수행(修行)’, 1969년부터 1973년 작품이 포함된 ‘피안(彼岸)’ 순으로 이어진다.

먼저 ‘입산’에서는 작가의 미술 입문 시기와 무사시노 미술학교 수학 시기, ‘니카전’에서 수상하던 당시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중 그에게 특대상을 안긴 ‘기사’를 눈여겨 볼만하다. 말갈기와 기사의 머리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진 독특한 조형에 다섯 면의 형상은 각기 다르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걸작으로 꼽힌다.

이어지는 ‘수행’에서는 자신만의 작업실을 만들고 밤낮으로 작품활동에 빠져 수행자처럼 생활하던 당시의 작품을 소개한다. 권진규가 홍익대 강사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장지원, 최경자, 오형자 등 제자들을 모델로 제작한 다수의 흉상도 볼 수 있다. 이 시기 탄생한 작품이 교과서에도 실려 유명한 ‘지원의 얼굴’(1967)이다. 긴 목을 앞으로 살짝 빼 시선을 위로 두고 있는 작품으로 단순하고 단정한 이목구비에 응축된 인간의 내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공간인 ‘파안’에서는 그의 후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권진규는 작품에 정신성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일에 천착한다. 자기 자신을 승려로 표현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 삼베의 거친 질감을 살린 건칠 작업으로 예수의 고뇌를 형상화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나무로 깎아 만든 ‘불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그는 미술계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외면을 받았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경우 교회의 의뢰로 제작했으나 분위기가 너무 비통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가사를 걸친 자소상’도 마찬가지다. 사랑했던 여인 오기노 도모를 일본에 두고 고국에 돌아왔으나 여러 일이 차례로 무산되며 고통에 빠져 있던 시기에 완성한 작품으로 길게 뻗은 목과 투명한 눈, 그리고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그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쓸쓸하게 다가온다.

또한 서울 전시 종료 후에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순회전(7월 26일~10월 23일)을 갖는다. 내년에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 상설전시장이 마련될 예정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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