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가진 자의 富가 쌓이는 이유”
[백세시대 / 세상읽기] “가진 자의 富가 쌓이는 이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4.11 11:34
  • 호수 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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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전 외무부 장관은 장관 공관에 들어가면서 9억5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싹 바꿨다. 뒤이어 공관에 들어간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3억3000만원을 들여 자기 입맛에 맞게 고쳤다. 국민혈세 낭비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당분간 관저로 사용한다는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은 국방부장관,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해병대사령관 등 군 고위직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외교부 장관 등의 공관 8개가 모인 공관 단지 안에 있다. 군 지휘관 관사는 부대 안에 두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각 군 총장 등은 서울 출장 때나 주말 휴일에 서울 공관을 사용해왔다. 한남동 공관은 2012~2016년 사이 연간 사용일수가 평균 67일에 불과했다. 이 역시 대표적인 국민혈세 낭비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공관은 어떤가. 달러 발행국인 ‘부자 나라’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정도에게만 공관을 제공한다. 우리처럼 장관 군 지휘관들에게 호사스런 공관을 제공하지 않는다. 미국의 권력승계 서열 3위인 하원의장과 5위 국무장관을 포함해 최고위 공직자들은 대부분 거처를 직접 마련한다. 미국 국방장관은 예외적으로 워싱턴DC 군인용 주택단지에 입주할 수 있지만 장관이 직접 월세를 낸다. 

영국의 총리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로 TV에 가끔 비치기도 한다. 이 건물은 주변의 웅장한 정부기관 석조건물들과 비교하면 옹색할 정도다. 일반 여염집 같은 300년 된 3층 벽돌집으로 1층은 총리실 직원들이 사무실로 쓰고 2,3층이 총리 가족의 숙소이다. 총리 가족이 함께 살지만 거주 및 생활비는 엄격하게 제한한다. 

영국 총리 숙소에는 국가가 월급을 주는 주방장, 집사장, 청소부, 하녀가 없다. 그런 혜택을 국고로 제공하려는 생각조차 안한다. 당연히 가족식사를 비롯해 청소 같은 일은 모두 총리 가족 책임이다.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일하다가 뛰어올라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들고 내려와 먹었다. 아니면 총리 관저 지하실의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똑같이 5파운드의 식대를 내고 사먹어야 한다. 영국의 기관이나 회사 식당은 무료점심을 제공하지 않는다. 무료로 나가는 만큼 국민 세금으로 메꿔야 해서다.

한국의 공관은 어떻게 운영되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한남동 공관 입주 전 16여억원을 들여 건물 외벽을 라임스톤이란 수입산 천연대리석으로 교체하는 등 ‘호화 리모델링’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아들 부부가 공관에 무상으로 살면서 강남의 아파트 분양대금을 마련했고, 김 대법원장의 며느리(한진 법무팀 사내변호사)가 회사 동료들을 초청해 공관에서 만찬을 벌이기도 했다. 공관에는 전속 요리사를 포함해 공관 유지 관리인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인원이나 인건비를 포함한 유지관리비 세부 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보안’ 등의 이유라는 게 기관들의 설명이다. 영국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일본의 장관들은 대부분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장관 재임 중에는 월세를 내며 의원 숙소에 거주하거나 자택에 사는 경우가 많다.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지자체 규정에 따라 공관에 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지역에서 예산 등을 이유로 공관 제도를 폐지하는 분위기다. 도쿄도 지난 2014년 공관 건물을 민간에 매각했다.

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이자 집무실은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엘리제궁이다. 대통령은 이곳에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프랑수아 미테랑,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등은 사택에서 잠을 자고 엘리제궁의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독일의 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잘 알려졌다시피 총리 공관에 들어가지 않고 베를린의 한 아파트에 세입자로 살며 출퇴근을 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방 한 칸 없어 짐 싸든 채 도(道)를 넘나드는 마당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국민혈세로 호사스런 공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가진 자의 재산은 늘고, 없는 자의 부채는 쌓이는 배경 중 하나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공관 인테리어를 바꾸고, 사적인 파티를 여는 망국의 ‘후진국 형 공관 비리’가 윤석열 정부에선 더 이상 볼 수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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