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빛: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근대부터 200년간 예술가들이 그린 빛의 세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빛: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근대부터 200년간 예술가들이 그린 빛의 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4.11 14:11
  • 호수 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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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테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빛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진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 입자’.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테이트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빛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사진은 올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 입자’.

성경의 ‘대홍수’ 그린 제이콥 모어, 윌리엄 터너의 대조적 표현 감상

백남준의 ‘촛불 TV’,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엡트강가의 포플러’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4월 5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는 촛불 하나가 전시장을 밝히고 있었다. 이 촛불은 독특하게도 작은 브라운관TV 안에 들어 있었다. 1975년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1932~2006)이 제작한 ‘촛불 TV’라는 작품으로 당시 첨단기술로 상징되는 ‘TV’ 속을 모두 비우고, 구시대를 대표하는 ‘촛불’을 넣어, ‘조화’(調和) 혹은 통합이라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빛’을 제시했다.

이처럼 빛을 탐구해온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5월 8일까지 진행되는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공동기획한 전시로 윌리엄 블레이크,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등 18세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한 예술가 43명의 작품 11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빛, 신의 창조물’을 시작으로 ‘빛, 연구의 대상’, ‘릴리안 린, 빛의 물리학을 구현하다’, ‘빛의 인상’, ‘빛의 흔적’, ‘빛과 우주’, ‘제임스 터렐, 빛으로 숭고함을 경험하다’ 등 16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데이비드 바첼러의 작품 ‘브릭레인의 스펙트럼2’가 관람객을 맞는다. 다양한 색의 빛을 내는 여러 형태의 모니터를 탑처럼 쌓아놓은 것으로 런던의 음식거리로 유명한 브릭레인의 조명과 간판 그리고 창문 빛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백남준의 ‘촛불 TV’(1975)
백남준의 ‘촛불 TV’(1975)

이어지는 ‘빛, 신의 창조물’ 섹션에선 윌리엄 블레이크, 아니쉬 카푸어 등 종교적 의미의 빛을 탐구한 예술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중 같은 주제인 성경 속 ‘대홍수’를 그렸음에도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제이콥 모어의 ‘대홍수’(1787년)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대홍수’(1805년)가 인상적이다. 윌리엄 터너의 ‘대홍수’는 노아의 방주를 다룬 창세기 7장을 묘사했는데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구조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제이콥 모어의 ‘대홍수’도 창세기 7장을 주제로 한다. 화폭의 중심부에서 빛이 퍼지며 전경의 인물들을 비추고 있는데 대재앙 속에서 존재하는 희망을 표현했다.

이어지는 ‘빛, 연구의 대상’에서는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의 ‘빛’에 대한 연구가 담긴 작품들을 공개한다. 터너가 대학교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빛’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한 스케치들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당시의 화가들이 어떻게 빛을 접하고, 작품에 활용했는지를 느껴볼 수 있다.

존 브렛의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도 눈여겨볼 만하다. 존 브렛은 자신의 범선을 실제 소유하고 항해를 할 정도로 바다에 관심이 많았고, 대다수의 해양화를 남겼다.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광선을 비롯해 구름과 바다 물결의 표현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빛에 대한 연구는 프랑스로 건너가 인상주의에서 절정을 이룬다. 전시에서는 빛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인상을 재현하고자 했던 인상파의 리더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 모네는 동료 화가들을 이끌고 무조건 야외에서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침‧점심‧저녁, 봄‧여름‧가을‧겨울 등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반사 효과를 연구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포플러 연작인 ‘엡트강가의 포플러’(189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작품 가운데 최고 보험가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공간에 배치한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실내, 바닥에 햇빛’(1906)과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는 근대와 현대의 작가들이 각각 빛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잘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햇빛과 창문, 그림자를 묘사한다. 다만 ‘실내, 바닥에 햇빛’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바닥에 만들어 낸 격자 무늬 그림자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함께 배치된 ‘저녁 6시’는 저녁 6시 창문 너머로 들어온 빛으로 바닥에 진 창문틀 그림자를 표현한 작품으로 얼핏 보면 작품인지 아닌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근대 미술까지만 해도 캔버스에 빛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캔버스를 벗어나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현대미술의 성격을 잘 보여준 것이다.

이외에도 과학적 시각을 적용한 릴리안 리의 ‘액체 반사’, 마트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형광등을 붙여 만든 것 같은 댄 플래빈은 ‘V.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올라퍼 엘리아슨 ‘우주 먼지 입자’ 등 현대미술 작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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