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10주년 기념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이중섭의 ‘황소’는 인생을 반전시킨 영감을 주었다”
서울미술관 10주년 기념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이중섭의 ‘황소’는 인생을 반전시킨 영감을 주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4.25 13:44
  • 호수 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설립한 서울미술관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내로라하는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사진은 이중섭의 ‘황소’.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설립한 서울미술관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등 내로라하는 근현대미술 거장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사진은 이중섭의 ‘황소’.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이 설립… 10년만에 누적관람객 100만명 돌파

박수근의 ‘우물가’ 등 걸작 소개… 안 회장의 미술품 구입 과정도 소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983년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한 남자가 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좀처럼 실적을 내지 못하던 그는 어느 날 태풍을 피해 서울 명동의 모 액자가게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중섭의 ‘황소’(1953) 인쇄물이 담긴 액자였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이 작품에 단숨에 사로잡혀 구입했고, 언젠가는 진품을 꼭 사리라 다짐한다. 그림을 산 이후 그는 황소처럼 인생을 밀고 나가며 승승장구했고 2010년에는 본인과 한 약속대로 진품도 손에 넣었다. 2012년에는 자신이 모은 미술품으로 미술관도 연다. 유니온약품 안병광(65) 회장과 서울미술관 이야기다. 

서울미술관의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전이 오는 9월 18일까지 진행된다. 2012년 8월 29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문을 연 서울미술관은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주요 작가의 작품들을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재구성한 전시로 남녀노소에게 사랑을 받으며 누적 관람객 100만명을 기록했다. 

이번 전시는 ‘두려움’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시대의 고난과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 고뇌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룬 한국 근현대 거장 31명의 주요 작품 140여점을 소개한다.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한 박수근의 대작 ‘우물가’(1953), 김환기의 점화 연작 중 최고로 꼽히는 ‘십만 개의 점 04-VI-73 #316’(1973), 미술 교과서의 표지로 쓰인 도상봉의 ‘정물’(1954), 천경자의 자전적 기록이라 일컫는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 등 한국미술사의 걸작을 모두 진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김환기 작가의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김환기 작가의 ‘십만 개의 점 04-VI-73 #316’

이중 ‘십만 개의 점 04-VI-73 #316’은 순백의 특별 공간에 설치해 마치 작품과 관람자 단 둘만 한 공간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자아낸다. 전시장 내 마련된 동선을 따라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화면 가까이서 개개의 무수한 점이 뽐내는 색채의 향연을 느낄 수 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를 배우 최불암의 목소리로 소개해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했다.

또 전시장 한 켠에는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총망라한 공간도 마련했다. ‘꽃자리’로 유명한 구상 시인이 “이중섭은 지우개가 필요 없는 작가”라고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던 이중섭의 드로잉 대작 ‘네 어린이와 비둘기’(1953)를 비롯해, 부인 마사코 여사와 주고받았던 엽서에 그린 엽서화, 이중섭의 가장 독창적인 분야로 인정받는 은지화,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절절이 담긴 ‘과수의 가족과 아이들’(1950년대) 그리고 역동적인 소의 동세가 빛나는 ‘황소’(1953)까지 이중섭의 미학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동판화 작업을 선보인 김상유의 유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판화가로서 명성을 얻은 김상유는 1980년 중반부터 꾸준히 유화 작업을 전개하며 서양화가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선보였다. 본 전시에서는 전국의 고건축을 배경으로 명상하는 인물을 순수한 이미지로 구현한 김상유의 유화를 폭 넓게 소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설명문과 더불어,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회장의 미술품 소장 과정을 담은 ‘수집가의 문장’도 함께 소개한다. 

안 회장이 수집한 그림들은 ‘한국미술사를 대표하는 명작’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가지면서도 그에게는 늘 ‘두려움’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전시에서는 오랜 기간 그림을 수집하면서 그가 작품에 가졌던 다양한 감정, 그리고 수집 과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최초로 공개하며 수집가로서의 두려움과 아픔, 희망과 사랑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안 회장이 처음으로 실물 그림을 산 것은 1991년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도 캔버스에 그린 유화나 수채화는 아니었다. 바로 이중섭이 종이 살 돈조차 없어 담배곽 안 포장지로 있는 은박지에 그린 ‘은박지 그림’인 ‘가족’(1953년경)이었다. 

이 작품을 구매하는데 그가 투자한 돈은 500만원이었다. 안 회장은 이 그림에 대해 “돈이 없어 담뱃갑 은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졌는데, 오히려 은지에 새기는 방식이었기에 이중섭만의 역동적인 드로잉이 더욱 빛이 난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기창 화백의 역작인 ‘예수의 생애’ 연작을 소장한 과정도 흥미롭다. 김 화백은 1953년 서울 화신백화점 갤러리에서 제5회 부부전을 갖고 이 연작을 선보였다. 연작은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을 30점에 담은 것으로 수태고지,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산상설교, 오병이어의 기적, 최후의 만찬 등 성서 속 주요 사건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재해석했다. 안 회장은  1998년 IMF 시절, 이전 소장가가 경제적 어려움에 이 연작들을 내놓자 “예수의 생애는 시리즈 전체를 사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당시 빌딩 두 채의 값을 주고 사들였다.

안 회장은 “미술이 저에게 인류애, 생명에 대한 존경, 창조의 이해를 교육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저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과 함께 미술이 가진 생명력을 나누며, 문화 백년대계를 염원한다”고 전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