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2등 수상작] ‘새내기 경로당의 홀로서기’
[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2등 수상작] ‘새내기 경로당의 홀로서기’
  • 최성철 전북 군산시 이편한세상디오션시티경로당 회장
  • 승인 2022.04.25 14:21
  • 호수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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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경로당의 홀로서기는 난감의 연속이었다”

[최성철 전북 군산시 이편한세상디오션시티경로당 회장] 아파트 게시판에 노인회를 조직한다는 안내문이 나붙었다. 며칠째 들고나며 눈에 익은 안내문에 은근히 호기심이 발동해, 결국 경로당으로 향했다. 

신축아파트라 모두가 낯선 이들이었다. 관리소장의 임시 사회로 노인회장을 선출하는데 아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어색한 표정 속에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회의가 진전이 없던 그때 좌중에서 제일 연로하신 분이 일어서더니 나를 가리키며 이분을 회장으로 추천한다며 손뼉을 쳤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박수가 터져 나왔고 마음의 준비도 없이 엉겁결에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갓 태어난 경로당의 홀로서기는 난감의 연속이었다. 건물만 덜렁 있고 내부는 텅빈, 신생아처럼 ‘맨몸’인 상태였다. 먼저 노인 여가복지시설 설치 신고필증과 고유번호증을 받으러 시청과 세무서를 다녀왔다. 대한노인회에 등록하기 위해 전북 군산시지회에 오고 가는 일도 수월치 않았다. 직인을 잘못 파서 다시 파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인회 간판을 걸 수 있었다.

회원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거실 소파는 누군가 이사 가며 버린 것을 어느 회원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냉장고도 중고를 어렵게 구해다 놓았다. 시계와 선풍기도 새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적막했던 주방에도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 등이 하나둘 채워졌다. 수건과 비누 등 화장실 비품 역시 십시일반 모아 갖춰나갔다. 이후 시청에서 김치냉장고를, 인근 병원에서 텔레비전을 기증해줬고 동 대표회에서 창문 커튼과 컴퓨터를 설치해주며 경로당으로 구색을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았다. 초창기 월례회 등 모임을 마룻바닥에 앉아 진행했다. 그래서 일어설 때마다 무릎이 아파 “아이고!” 소리를 내는 회원들이 많았다. 의자 마련이 시급했다. 아파트의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 내놓은 헌 의자를 보는 대로 가져다 닦고 수선하여 사용했다. 회원수에 맞게 구비한 경로당 의자는 높이도 크기도 색깔도 생김새와 모양이 제각각이만 다행히 앉고 일어서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 오히려 노인들 체격이 다 달라 자연스럽게 자기 체격에 맞춰 앉고 있다. 마치 일부러 체격에 맞춰 의자를 마련한 셈이었다. 다만 헌 의자라 다리 밑이 다 닳아 옮길 때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문제는 보풀 방지 장식 보드를 사다 붙이는 것으로 해결했다.

노작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게 최대 12명이 마주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도 준비했다. 이동식 자석 칠판을 마련해 설명과 알림판으로 사용하고 있고. 책장도 구비해 책과 잡지와 신문을 진열했고 버려진 화분을 모아 꽃과 나무도 가꾸기 시작했다. 화룡점정으로 경로당 거실벽 정면에 고급스러운 태극기를 게시했다. “꼭 학교 교실 같네”라는 회원들의 흐뭇한 표정들을 보니 왠지 코끝이 찡했다. 

개소 후 일 년을 이렇게 지내며 깊이 깨달은 점이 있다. 경로당 운영을 결코 가볍게 여긴다거나 사소한 일 한 가지라도 허투루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보다 더 세심하고 철저한 업무 추진이 요구됐다. 회원명부 작성 및 회원 관리, 회의록 작성, 각종 홍보 및 안내, 청소 및 일자리 회원 관리, 회원들의 원만한 인간관계 유지, 공과금 납부, 심지어 화분 관리에 거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및 출입자 관리 업무 등 할 일이 적지 않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회장으로서 마냥 경로당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것이다.

경로당 운영비 운용과 관련한 용어는 낯선데다가 그 현황과 예산을 숙지하고 목적에 맞게 집행하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출결의서 작성과 영수증 챙기기, 금전출납부 정리, 물품 대장 정리 및 물품관리 등 제때 처리할 일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 연말 정산 때 국가지원비인 난방비 잔액을 반납하라는 시책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평소 전기와 가스를 아껴 쓰자며 누누이 다짐해 절약했다가 80여만원을 반납했다. 주었다 빼앗아 가는 느낌이 드는 이 제도는 시급히 수정 보완할 사항이라 생각된다. 다행히 코로나19 때문에 위로의 차원으로 2021년도의 남은 국비는 회원들을 위해 공평하게 사용하라는 지침은 큰 호응을 얻었다. 

노인들의 안식처인 우리 경로당의 세 번째 생일이 곧 돌아온다. 코로나19로 인해 안타깝게도 걸음마를 멈춘 지 2년이 넘어섰다. 겨우 얼굴이 익어 서로 말문을 트려던 회원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종식돼 새롭고 역동적인 경로당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세 살배기 우리 경로당의 힘찬 뜀박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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