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파꽃
[디카시 산책] 파꽃
  • 디카시·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22.05.02 10:49
  • 호수 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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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꽃

눈물 쏙 빼는 매운 사연도

처음부터 독한 건 아니었을 거야

비바람에 차이고 눈보라에 꺾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독해졌을 거야


텃밭에 심어놓은 파가 주먹만 한 꽃을 피워 올렸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로만 알고 있던 파가 저토록 순백의 꽃봉오리를 가득 피워 올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향기가 짙어서인지 아침부터 오후 늦도록 벌과 나비가 끊이질 않았다. 양파나 파는 껍질만 벗겨도 매운 맛이 확 올라와서 눈이 맵다. 저렇게 순하디 순한 모습을 한 꽃 어디에 그토록 매운 사연들이 숨겨져 있었을까. 

파는 겨울의 추위에도 얼지 않는다. 황량한 들판에 겉잎은 말라 비틀어져도 속잎만은 결코 주눅 들지 않고 한층 더 뾰족하게 당당하게 푸른 기상을 잃지 않는다. 추위가 강할수록 뿌리는 더 새하얗게 맹랑하게 매운맛이 드는 것이다. ‘니까짓 것에 내가 기 죽을 성 싶으냐’하는 오기가 한겨울을 보내고 저렇게 당당하게 꽃대를 올리는 것이다. 보란 듯이 온 천지에 그 향기를 날려 보내는 것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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