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면무도회’ 전, 마스크 너머 ‘인간의 본성’ 탐구한 현대미술 작가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가면무도회’ 전, 마스크 너머 ‘인간의 본성’ 탐구한 현대미술 작가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5.02 11:24
  • 호수 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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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권진규의 ‘마스크’(왼쪽)와 육명심의 ‘제주도’.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표현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사진은 권진규의 ‘마스크’(왼쪽)와 육명심의 ‘제주도’.

얼굴을 가리는 행위에 관한 의미 탐색한 국‧내외 작품 40여점 소개

환조‧부조 중간형태 권진규의 ‘마스크’, 육명심의 ‘제주도’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4월 27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코로나 시대를 상징하는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미술관도 오랜만에 활기를 찾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여전히 또다른 상징인 ‘마스크’는 벗지 못하고 있었다. 저마다 개성 넘치는 마스크 즉, 가면을 쓴 관람객들이 지켜보고 있던 것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탐구한 40여개의 ‘가면’이었다. 팬데믹 이전 가면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썼다. 작가들도 이점을 파고들었다. 반면 현재 ‘마스크’는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생존의 도구가 됐다. 서로 다른 두 의도가 만난 미술관은 묘한 풍경을 연출했다. 

얼굴을 가리는 행위에 관한 의미를 들여다보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7월 31일까지 ‘가면무도회’ 전에서는 마스크를 소재로 한 국‧내외 작품 40여점을 소개한다.

가면무도회나 탈놀이, 각종 영화에 등장하는 가면 쓴 영웅과 악당, 인형극, 그리고 가상세계 속 아바타 등 마스크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타인을 가깝게도, 멀게도 만드는 이중적인 도구이자 진실을 가리는 위선이기도 하고 관습과 편견으로 가득찬 문화이기도 하다.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이러한 가면의 본질을 추적하고 있다.

먼저 곽덕준의 ‘클린턴 곽-I’(1999)은 타임지 표지 위에 거울을 겹쳐들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자신의 얼굴이 겹쳐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작가를 포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인물과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지의 허구적 권력에 저항하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근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권진규는 전통 공예기법인 건칠(乾漆)을 도입하거나 추상적인 부조 작품들을 제작하는 등 새로운 실험을 통해 한국미술의 지평을 넓혀왔다. 완전 입체인 환조와 평면적인 부조의 중간형태인 ‘마스크’가 그의 실험성을 잘 보여준다. 마치 보아서는 안 될 어떤 것을 보았기에 초월적인 힘에 의해 굳어버린 것 같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육명심의 ‘제주도’는 강한 흑백 대비와 과감한 화면구성을 통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육명심은 홀로 사진을 공부하며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제주도’는 마치 가면처럼 보이는 모호한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사회를 풍자하는 회화를 선보여온 이흥덕의 ‘붓다,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대사회 속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인간 군중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것으로 전면에 각종 탈을 쓰고 화려한 색채로 사람들을 묘사해 이성의 가면 속에 감춰진 현대인의 본능과 욕망을 잘 보여준다.

석창원의 ‘자화상’은 작가의 얼굴을 석고로 뜬 후 도자로 빚고 그 위에 하나하나 점을 찍는 점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인간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 속 인간의 모습은 때로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숭고하기도, 때로는 지옥 같은 불더미 안에서 뒤엉킨 사탄의 몸부림 같기도 하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욕망, 희생을 상징하는 보편성을 드러냈다.

김영진은 학교 실기실에서 우연히 두개골을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을 인물을 상상하며 제작한 ‘몽타주-아름다운 사건’을 선보였다. 작가는 먼저 두개골을 다섯 개로 복제한 후, 동일한 골격이지만 서로 조금씩 다른 모습의 여성을 상상하며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제작된 두상 중 하나는 작가 본인의 모습을 투사해 마치 여성이 숨을 쉬며 되살아나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아울러 함께 놓인 얼굴 골격 측정기는 나치의 우생학(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상징하며, 세계인명사전은 권력과 사상에 따라 인간을 우등과 열등으로 재단해온 폭력적인 장치들을 의미한다. 

김정욱의 무제도 인상적이다. ‘무제’ 속 인물의 큰 눈은 마치 심연처럼 깊이를 재기 어렵다. 이는 보는 이의 생각에 따라 무언가 강렬한 욕망을 감추고 있는 눈빛이 되기도, 어린아이의 눈처럼 한없이 선량한 눈빛이 되기도 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가면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들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며, “코로나19 대유행 장기화로 피로해진 국민들에게 색다른 사유와 흥미로운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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