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세 잎 토끼풀의 사랑과 희망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세 잎 토끼풀의 사랑과 희망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2.05.09 10:59
  • 호수 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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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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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잡초 중 처치곤란한 토끼풀

네잎 클로버는 희귀한 변종인데

발견하면 ‘행운’으로 여겨

세 잎 클로버는 ‘희망’ ‘사랑’ 상징

주변에 널린 평범함의 가치 전해

계절이 바뀌는 일조차 쉬울 리가 없다. 풀렸나 싶은 날씨도 한밤중으론 냉기가 돌고, 휘돌아 부는 거센 바람은 이제 막 신록을 낸 식물들을 괴롭힌다. 이 녹록지 않은 계절의 오고 감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네 계절을 다 경험하는 오락가락 속에 우리의 감정도 오르락내리락 널을 뛴다. 생각해보면 어느 해인들 맘 편한 계절과 해가 있었던가! 그래도 지나간 일은 물기 같은 슬픔과 아픔이 세월에 말려져서인지 견딜만했다 싶지만, 당장 닥친 일은 언제나 유난히 힘들기만하다. 

2022년, 한 살 더 먹고 맞는 올해 봄도 유난히 힘들다. 며칠 전부터 뭔지 모른 뒤숭숭함이 꿈으로 훑고 지나간 뒤, 아는 이로부터 묘한 전화 연락이 왔다. 몇 년 전부터 이래저래 아는 사이인 나보다 살짝 윗도는 나이의 그녀 목소리는 푹 가라앉고 쉬어 있기까지 했다. 

그냥 이야기 좀 하고 싶다 길래 집으로 오라 했는데, 그날 길고 긴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무슨 걱정이 있을까 싶은 교육자 집안엔 골칫거리 아들이 있었다. 대학을 실패한 뒤 언제부터,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어느 시점부터 아들의 인터넷 도박이 시작됐다고 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그녀가 돌아간 뒤, 나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측은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예순을 넘기지도 못하신 채 별 특별한 일도 없이 두 분의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심을 지켜봤다. 

이후 동생들의 망가짐과 힘겨움도 내내 이어졌고, 이 모든 일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맘을 쉽게 놓지 못한다. 불행이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 버린 지 오래다. 삶의 불행은 근거도 없이 너무나 무작위로 찾아올 수도 있기에 오늘의 평안에 대해서도 늘 가슴을 쓸어낼 수 밖에 없다.

다음날부터 나는 짬이 생기면 주섬주섬 정원으로 나갔다. 잡초를 뽑고, 새로운 봄 식물을 심으며 내내 울컥 올라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의 삶에도 곧 평화로움이 찾아오기를 바랬고, 적어도 나의 삶 속에도 예측하지 못할 불행이 찾아오지 않기를 되새겼다. 

정원에서 가장 처치 곤란한 잡초 중 하나가 ‘Oxalis’(옥살리스)라는 학명을 지닌 ‘토끼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토끼가 뜯어먹는 풀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서양에서는 산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Acidus’(아시두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꽃은 작은 공 모양으로 흰색 혹은 분홍으로 피어나는데, 꽃보다는 하트 모양의 잎이 훨씬 특징적이다. 

그런데 이 토끼풀의 경우, 만 개의 중에 하나가 기후나 혹은 그 지역의 특정 조건에 의해 네 장의 잎을 지닌 변종으로 태어나기도 한다.

이 변종을 우리는 ‘네잎 클로버’라고 부르고, 발견하면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만 개 중에 하나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3장의 잎을 지닌 평범한 토끼풀의 상징은 ‘희망’과 ‘사랑’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천에 널려 있는 ‘사랑’과 ‘희망’을 버려둔 채 만의 하나인 ‘행운’을 찾아 다닌다고 말하기도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네 장의 행운보다는 늘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희망과 사랑을 잡을 일임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 그래서 우리가 예의처럼 건네는 ‘대박나세요~’의 인사말도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대박의 유래는 뚜렷하지 않지만, 도박판에서 주로 쓰이기 시작해 일상화된 것으로 본다. 정원에 클로버가 자리 잡는 건 싫지만, 우리 삶에는 만의 하나의 행운인 클로버보다는 소소한 사랑과 희망의 토끼풀이 불안한 우리 삶의 틈에 잘 자리 잡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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