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지원재단, 신규사업 추진에 기금 고갈 우려… 재단 취지와 안맞아
노인지원재단, 신규사업 추진에 기금 고갈 우려… 재단 취지와 안맞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5.19 02:50
  • 호수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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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창립 10주년… ‘재능나눔활동 사업’ 등 눈부신 성과 후 주춤
노인지원재단은 2012년 창립 이래 재능나눔활동 지원사업을 비롯해 경로당 활성화 지원, 쪽방촌 노인돕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지난 2021년 서울 광진구의 한 경로당 어르신들이 라운드백 등 생활용품을 건네받고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
노인지원재단은 2012년 창립 이래 재능나눔활동 지원사업을 비롯해 경로당 활성화 지원, 쪽방촌 노인돕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다. 지난 2021년 서울 광진구의 한 경로당 어르신들이 라운드백 등 생활용품을 건네받고 감사인사를 하는 모습.

230만 회원이 2000원씩 십시일반 기금 조성… 최근 후원금‧기금 감소

방송국 설립 등 신규사업 추진에 ‘기금 고갈’ 우려… “재단 취지와 안맞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5월 10일, 창립 10주년을 맞은 단체가 있다. 전국 6만7000개 경로당과 그 회원들이 ‘주인’인 ‘노인지원재단’이다. 2012년 5월 10일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한 노인지원재단은 사각지대의 노인들을 지원하는 등 노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경로당 노노케어 사업’을 펼치며 국내에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는 개념을 정착시켰고 이후 정부 사업으로 확대된 노인재능나눔활동지원사업을 통해 노인들을 향한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노년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경사스러운 10주년을 맞았지만 최근 재단은 주력 사업이 종료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어 이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커지고 있다.

◇노인지원재단의 창립과 발전

노인지원재단의 시작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취임한 지 4개월 된 이 심 대한노인회장이 회장단 회의에서 재단 설립의 필요성을 주창하며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당시 이성록 한국복지대학 교수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이 교수를 중심으로 TF팀을 구성해 설립 추진에 나섰다.

그리고 이 약속은 차근차근 이행됐다. 같은 해 8월 중앙회 산하에 발전기획단을 출범시키고 ‘노인지원재단 설립’ 분야를 만들었다. 이때 오남진 전 대구연합회장을 노인지원재단설립추진위원장으로 선임해 재단의 취지, 운영 규모, 방향성 등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듬해 3월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인단체로 자리잡은 대한노인회는 재단 설립에 속도를 높인다. 중앙회는 이사회 결의와 정기총회 승인을 거쳐 1차적으로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보유기금 10억원 중 6억원을 재단 설립기금으로 전환했다. 6월부터는 전국 경로당을 중심으로 ‘폐 휴대폰 모으기’ 운동도 시작했다. 전국에서 수거된 폐 휴대폰은 4만대에 육박했고 이렇게 모인 금액만 3800만원에 달했다.

230여만 노인 회원들이 2000원의 성금모아...일종의 재단 주주들인 셈

‘폐 휴대폰 모으기’로 급물살을 탄 재단 설립은 2012년 1월 12일 발기인 총회 및 창립이사회를 통해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초대 이사장으로 송인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선출했다. 이후 기금 마련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재단이 실제 설립되면서 어려운 노인을 지원한다는 재단의 ‘진심’이 전국의 경로당에도 전해졌다. 회원 1명당 소중한 쌈짓돈 2000원씩을 십시일반 모았다. 이렇게 회원들이 모은 성금만 2022년 현재 47억원을 넘어섰고 참여 회원도 230여만명에 달한다. 재단이 주식회사는 아니지만 노인 회원들은 2000원의 성금을 통해 일종의 재단 주식을 한주씩 보유한 주주들인 셈이다. 

재단은 이후 230만명이 넘는 주주들의 성원에 부응하는 행보를 펼친다. 설립과정에서부터 추진력을 발휘한 재단은 2013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으로부터 5억원을 지원받아 전국 10개 지회를 선정, 젊고 건강한 노인이 상대적으로 약한 노인을 돕는 ‘경로당 노노케어 사업’을 펼치며 우리 사회에 신선하고도 긍정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경로당 노노케어 사업은 노인들도 충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자살율 및 실종자 비율을 약 30% 감소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14년에는 노인재능나눔활동지원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정부 사업으로 확장됐다. 2018년에는 5만명이 참여하는 등 매년 3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노인사회활동으로 정착됐다.

이외에도 매년 낙후된 경로당 시설 개·보수, 물품‧프로그램 및 취약지역 경로당 의약품 지원사업 등을 펼치며 경로당 활성화에도 앞장섰고 따뜻한 겨울나기와 시원한 여름나기, 서울역 노숙인 및 쪽방촌 노인돕기, 독거노인 지원사업, 저소득 노인 보청기 무료 지원사업 등을 통해서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돌보며 재단 설립 취지와 정신을 지켜왔다.

◇노인지원재단의 위기와 과제

하지만 노인지원재단은 지난해 노인재능나눔활동지원사업이 종료된 것을 시작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지원재단은 2017년부터 기부금 현황을 홈페이지(노인지원재단.org) 상단 ‘노인지원재단-투명경영-경영현황’과 ‘모금사업-오늘의 기부자’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재단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66억원의 기금을 모았다. 2012년부터 집중적인 모금에 나섰고 현재까지 이 심 전 회장과 이중근 전 회장이 각각 1억원씩 납부한 것을 포함해 중앙회, 시도연합회 및 시군지회 임직원들이 목표액 1억원을 7배 이상 훌쩍 넘기는 7억여원을 모금했고, 경로당 회원들도 목표액(50억원)의 94% 가량인 47억원을 모아 전달했다. 

현재는 각종 사업 지원과 인건비 등으로 지출하고 38억원 정도가 남아 있지만 매년 후원금이 줄고 있고 덩달아 적립금이 점차 고갈되는 점은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다. 2012년 34억7000만원, 2013년 10억8000만원을 모금하며 적립액을 늘려나갔지만 2015년 7억2000만원을 기록한 이후 모금액이 감소세로 전환했다. 김호일 회장 임기 첫해인 2020년에는 약 9100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억원 미만을 기록했고 2021년에도 1억6900여만원을 모금하는데 그쳤다.

노인지원재단은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고 이사장에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을 선임했다.
노인지원재단은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열고 이사장에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을 선임했다.

김호일 중앙회장이 직접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분리 원칙 깨져

대한노인회장이 노인지원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노인지원재단은 2021년 12월 3일 제5차 이사회에서 김호일 대한노인회 회장을 제5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창립 때부터 대한노인회와 재단은 상호 긴밀히 협력하되 분리 운영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그런데 김호일 회장이 직접 재단을 맡으면서 분리 원칙이 깨지고 말았다.

이사장을 겸직하게 된 김호일 회장은 최근 공석이 된 사무처장 인건비를 활용, 이사장 및 상임이사 판공비 인상과 전문 모금 담당관을 채용해 모금 업무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에 관한 안건을 지난 4월 29일 열린 2차 이사회를 통해 관철시켰다. 이를 통해 각각 100만원이었던 이사장과 상임이사의 판공비를 300만원, 200만원으로 인상했다. 기금에서 연간 6000만원을 이사장과 상임이사의 판공비로 사용하는 셈이다.

이사장·상임이사 판공비 인상

김호일 회장은 “그간 노인지원재단이 모금 업무를 소홀히 해 적립액이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판공비를 인상한 만큼 책임감 있게 모금 활동을 진행하고 모금 담당관도 채용해 적립액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인지원재단은 10주년을 맞아 한단계 도약을 위해 이르면 6월 늦어도 연내에는 노인전문방송국을 설립해 운영한다는 중장기 비전도 제시했다. 재단은 5억원을 출연해 방송법인을 설립하고 한 독지가로부터 방송국 건물을 지원받은 후 업무협약을 맺은 OBS가 프로그램 제작을 맡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국의 노인지도자들이 수월하게 사회복지사 자격을 따도록 돕기 위해 평생교육원 개원도 이르면 올해 6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다. 김호일 회장은 “비용이 많이 드는 방송국은 여러 개인과 기관과 지분을 나눠 운영하는 방식으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재단의 행보가 설립 목적을 위배하고 되레 기금 고갈을 재촉한다는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상파 3사 등 대형 방송국들도 적자에 시달리는 데다가 수강생이 적으면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큰 평생교육원 운영도 성공할 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많다. 이와 함께 방송국과 평생교육원 운영이 ‘노인들이 힘을 모아 경로당 회원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어려운 노인을 돕는다’는 취지로 탄생한 노인지원재단의 설립 정신과 부합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방송국과 평생교육원 설립은 재단의 취지와 맞지 않아

중앙회 사무총장과 노인지원재단 상임이사를 역임하며 재단 설립에 산파 역할을 한 이성록 한국복지대학 교수는 “재단은 후원자들이 기금을 기부한 의도대로 운영하는 ‘모금 윤리’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노인지원재단에 수백만의 경로당 회원들이 쌈짓돈을 냈던 이유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미흡한 경로당의 활동을 지원하고 보다 어려운 노인을 돕는데 있는데 방송국과 평생교육원 설립은 재단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노인들을 위해 방송국과 평생교육원을 설립하고 싶다면 노인지원재단의 기금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별도의 기금을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아 추진해야 한다. 노인지원재단 예산으로 방송국과 평생교육원 설립을 강행한다면 취지에 맞지 않게 기금을 사용한 타 재단들처럼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아 재단과 대한노인회 이미지 모두 실추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광선 서울연합회장은 “노인지원재단은 경로당 회원들이 최대주주인 단체로, 회원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들을 수 없다면 최소한 각 시도 회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연합회장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면서 “노인지원재단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중대한 결정은 재단 이사회뿐만 아니라 대한노인회 연합회장단의 목소리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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