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4]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 “조선이 천하에 가장 가난한 건 사대부 탓”
[인문학여행 역사의 길을 걷다 4]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 “조선이 천하에 가장 가난한 건 사대부 탓”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2.05.16 13:34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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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걸쳐 완성한 ‘임원경제지’…농사일서부터 요리법까지

대제학·이조판서 지냈지만 자식 굶긴 채 글만 읽는 선비 증오

[백세시대=오현주기자] 조선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정약용-에 비해 ‘서유구’란 이름은 생소하다. 이조판서, 우참판, 대제학을 지낸 서유구(徐有榘·17764~1845년)는 조선 최대의 종합백과사전격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사진)를 편찬한 실학자이다. 할아버지는 대제학 서명응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서호수이다. 

그는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 북학파와 교유했다. 과거에 급제해 정조의 최측근으로 조선 개혁의 꿈을 함께 했으나 정조의 급사로 궁궐을 떠났다. 파주로 들어가 농사와 목축을 하며 임원경제지를 집필했다. 17년간 야인생활을 정리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대사헌으로 있으며 효명세자의 개혁정책에 힘을 썼고 백성의 규율과 조세제도의 개혁, 농지 개간, 수리 제도의 개선 등 농업생산력 증대에 집중했다. 은퇴 후에 임원경제지 편찬에 매진하는 한편 젊은 후학들을 지도했다. 

서유구는 글 읽고 풍류 즐기는 선비를 증오했다. 일은 하지 않고 별 소용 가치가 없는 학문에 정력을 낭비해서다. 그는 “곡식이나 축내고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는 자 중에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실용 책자를 만드는데 몰두했다. 그가 40여년에 걸쳐 완성한 종합백과사전은 내용과 양적인 면에서 조선왕조실록에 버금간다. 우리나라의 동의보감 등 한·중·일 3국의 실용서적 853권을 참고했다고 한다.

농사백과 ‘본리지’, 전국시장백과 ‘예규지’, 음식·요리백과 ‘정조지’, 식용식물백과 ‘관휴지’, 화훼백과 ‘예원지’, 과실·나무백과 ‘만학지’, 의류백과 ‘전공지’, 농업기상·천문백과 ‘위선지’, 목축·양봉·사냥·어로백과 ‘전어지’, 건축·도구·일용품백과 ‘섬용지’, 정신수양·건강백과 ‘보양지’, 의학백과 ‘인제지’, 가정·향촌생활의례백과 ‘향례지’, 교양·기예백과 ‘유예지’, 휴식·오락·취미백과 ‘이운지’, 주거선택백과 ‘성택지’, 가정경제백과 ‘예규지’ 등 16개 분야, 총 113권, 250만자로 구성됐다.

전국의 시장에 관한 기록 ‘예규지’를 보면 팔도시장은 전라 187개를 비롯, 1053개였다. 전북은 83개이며, 전주가 부내대장(남서문밖), 부내소장(동북문밖), 봉상장 등 11개로 가장 많다. 부내소장은 중국의 재화와 일본의 물산을 들여와 유통해 상인들이 모여들고 온갖 물건이 넘쳐나는 등 나라 안의 큰 시장이었다.

음식과 술 등 먹거리에 관한 ‘정조지’(鼎俎志)도 백미다. ‘정조’란 솥과 도마란 뜻이다. 한·중·일 1748가지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떡만 해도 과일떡, 무떡, 불떡, 아랍부꾸미 등 97종, 만두는 김치, 꿩, 숭어, 오리, 양, 게, 참새, 연밥 등 28가지다.

책의 조리법대로 음식을 만들어보니 맛도 좋은데다 친환경적이었다. 정조지의 레시피대로 상설 요리하는 곳이 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서유구 선생 기념관이다. 순창군수, 전라관찰사를 역임한 인연으로 이곳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2019년 11월에 문을 연 이곳에서 전주 10미 식자재를 활용한 전통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전주 10미는 선너머 미나리를 비롯해 기린봉 일대의 열무, 교동 황포묵, 신풍리 애호박, 서낭골 파라시, 소양 서초, 삼례 무, 한내 게, 한내와 남천의 모래무지, 교동 콩나물 등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서유구 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처음엔 ‘과연 이렇게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연꽃 열매가 들어있는 받침 부분인 연방을 사용해 ‘연방만두’를 재현해보고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그는 “서유구 선생 말대로 연방 밑을 잘라 스펀지 같은 속을 파내고 잘 다져 간장양념을 한 가자미 살을 채웠다”며 “김이 폭폭 오르는 작은 시루에 쪄내 뚜껑을 열어봤더니 운무 속에 떠 있는 신선마을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돼지를 구울 때 냉수 한 동이를 옆에 뒀다가 굽자마자 물에 담그기를 10여 차례 반복한 뒤에 기름간장과 양념을 바르고 구우면 매우 연하고 맛있다”고 귀띔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사대부를 메뚜기처럼 보았다. “(사대부는)조상 중 한 명이라도 벼슬한 이가 있으면 눈으로는 고기 魚자와 노나라 魯자도 구분 못하면서 손으로는 쟁기나 보습을 잡지 않는다. 처자식이 굶주려 아우성쳐도 돌아보지도 않고 손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성리(性理)를 이야기 한다. 그리하여 조선이 천하의 가난한 나라가 된 것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추세일 뿐이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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