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드라마 ‘파친코’…생존 위해 4대 걸쳐 분투한 자이니치의 삶 ‘뭉클’
화제의 드라마 ‘파친코’…생존 위해 4대 걸쳐 분투한 자이니치의 삶 ‘뭉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5.16 13:53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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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티비플러스에서 제작한 ‘파친코’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자이니치의 삶을 세밀하게 담아나 호평을 받았다. 사진은 극중에서 20대 선자를 연기한 배우 김민하의 모습.
애플티비플러스에서 제작한 ‘파친코’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자이니치의 삶을 세밀하게 담아나 호평을 받았다. 사진은 극중에서 20대 선자를 연기한 배우 김민하의 모습.

윤여정‧이민호 등 출연… ‘빠찡꼬’ 사업으로 생계 이어간 가족사 전개

떠돌이로 한국, 일본 어디에도 정착 못한 재일교포의 삶 다각도 조명

[백세시대=배성호기자] “1910년 일본은 제국을 확장하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한국인이 생계를 잃고 고향을 뒤로하고 외국 땅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가족들은 견뎠다. 여기 몇 세대에 걸쳐 견뎌낸 한 가족이 있다.”

애플티비플러스(AppleTV+)에서 제작한 8부작 드라마 ‘파친코’는 이러한 소개와 함께 시작한다. 이어 화면에 ‘양진’이란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녀는 돈을 받고 구순구개열(언청이)을 앓으며 다리까지 저는 ‘훈이’에게 시집을 간다. 두 사람은 세 아이를 낳았지만 돌이 지나기도 전 모두 떠나보낸 아픔을 겪었다. 결국 양진은 무당을 찾아가 눈물로 건강하게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빈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통했고 결국 ‘선자’라는 예쁜 딸을 낳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부는 몰랐다. 4대에 걸쳐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격랑에 휩쓸릴 줄은 말이다.

애플티비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어

윤여정, 이민호 등의 열연으로 주목받은 ‘파친코’가 호평 속에 종영했다. 이번 작품은 재미작가 이미진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선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자이니치(在日, 재일교포)의 삶을 다룬다.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닌 1910, 1930, 1980년대까지 세 시간대를 교차해 오가며 전개된다. 극의 주인공 격인 선자는 전유나(어린 시절), 김민하(16세에서 22세 사이) 윤여정(노년)이 각각 연기하며 암울한 시대를 견뎌낸 자이니치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면서 가족과 이민, 그리고 사랑 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1915년 일제강점기 조선, 부산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양진과 훈이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딸 선자를 똑똑하고 당차게 길렀다. 총칼로 무장한 일본 순사들이 나타나면 조선 사람들은 모두 땅을 본 채 두려워하지만 선자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선자가 성인이 되기 전 훈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며 버텨낸다. 그러던 어느날 선자(김민하 분)는 오사카 수산물 중개상 한수(이민호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한수가 오사카에 가족이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걸 알게 된 선자는 배신감에 슬퍼한다.

한편 선자네서 하숙하던 선교사 이삭은 홀로 아기를 지키려는 강인한 선자를 바라보며 존경과 연민을 느끼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까지 한다. 1931년 선자는 이삭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하고, 태어난 아들을 함께 키운다. 그간의 불행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한 삶이 이어질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로서 온갖 핍박과 설움을 겪는다. 광복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세상 어디에도 그녀의 가족이 발을 디딜 공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자는, 그녀의 가족은 꿋꿋하게 견뎌내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파친코 사업, 재일동포가 개척

이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자이니치의 삶을 알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200만명 정도이며, 해방 이후에도 60만명은 귀환하지 못했다. 일본에 남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을 ‘자이니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사회 최하층으로서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 드라마 제목은 자이니치들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친코에 종사했던 것에서 따왔다. 우리나라에는 ‘빠찡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파친코는 일본의 거대 도박 사업으로 1950년대 초반 점포가 3만8000여곳에 이를 정도로 성행했다. 

이 파친코 사업을 시작한 것이 바로 자이니치다. 1925년 오사카에서 처음 선보인 파친코는 이들의 발명품이었다. 당시 자이니치들은 제도권 내에서 직업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디아스포라로 세계로 떠돌다 서양인들이 천시했던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유대인의 삶과도 흡사하다.

이번 작품은 이런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다각도로 그리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선자,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수, 억압의 시대에 딸을 지켜내고자 했던 강인한 어머니 양진, 굳건한 믿음으로 현실을 헤쳐나가는 이삭 등 다채로운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시대상을 잘 담아낸 영상미도 눈길을 끈다. 한국, 일본, 캐나다를 오가며 1915년 부산 영도부터 1989년 북적이는 뉴욕과 일본의 호황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앞다퉈 호평을 쏟아냈고 시즌2 제작도 확정됐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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