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장려상 수상작] ‘할아버지의 심폐소생술’
[백세시대 공모 ‘나와 경로당 이야기’ 장려상 수상작] ‘할아버지의 심폐소생술’
  • 장경호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일경로당 회장
  • 승인 2022.05.16 14:01
  • 호수 8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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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쓰러진 할머니 곁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장경호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일경로당 회장] 심폐소생술은 일상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응급조치 방법이다. 낯모르는 사람이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지나가던 누군가 심폐소생술로 목숨을 구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심폐소생술은 경로당에서도 꼭 필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연로한 회원들이 위험한 순간에 처해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13일.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모처럼 경로당 회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코로나19 유행 초창기로 거리두기 등 단체 모임의 제한을 받지 않을 시기였다.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 편한 날들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로당 회원들과 단체급식을 하겠다는 승인을 받고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고 모두 즐거워했다.

24명이 방문한 식당은 경로당 인근에서 갈비를 파는 식당이었다. 샐러드 등 싱싱한 채소를 마음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데다가 종업원이 직접 구워주는 갈비 맛은 특히 꿀맛이었다. 회원들의 표정도 희희낙락 얼마나 좋아하는지, 함께 점심을 먹으러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꽃 피우는 대화로 시종일관 시끌벅적했고 코로나 때문에 마음 불편했던 지난 시간은 그 안에 묻혀만 갔다. 식사 후 한껏 달아오른 기분으로 그날 식대를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회장님! 회장님! 큰일 났어요! 큰일!”

갑자기 필자를 찾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급하게 찾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웬 소란이지’ 하는 생각마저 들어 일단 계산을 끝내고 회원들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어디 가셨었어요. 할머니가 죽었나 봐요. 큰일 났어요.” 

황급한 외침 소리에 급히 달려가 보니 의자에 앉은 채 머리가 옆으로 쳐지고, 양팔은 뒤로 축 늘어놓은 80대 중반을 넘기신 A할머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회원들은 그 할머니 주변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어쩌지 어쩌지 이거 어떻게 해” 하며 필자의 얼굴만 쳐다보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황당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좋은 날, 이게 웬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쾅쾅 뛰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얼른 그 할머니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의식이 없었다. 더해 가는 불안감에 어떻게 해서라도 할머니를 살려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심폐소생술이 생각났다.

“119에 빨리 신고하고 통화가 되면 바로 제 귀에 전화기를 대주세요.”

필자는 즉시 회원들에게 앉아있던 의자를 빼게 하고, 그 할머니를 식당 바닥에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 얼굴을 몇 번 흔들어 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얼른 할머니의 얼굴을 옆으로 돌려놓고 가슴을 눌렀다 뗐다를 반복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구급대원과 통화가 연결됐다. 전화를 하면서도 잠시도 할머니의 가슴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내 숨도 가빠지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할머니의 입안에서 조금 전에 먹었던 음식물들이 비치는 것이었다. 

“아, 할머니 빨리 뱉어요! 뱉어요!”

필자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할머니한테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마구 소리를 쳤다. 빨리 뱉으라고. 다행히 미동이 없던 A할머니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서둘러 달려오는 구급대원들이 정말 반가웠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사이 구급대원들은 A할머니를 들것에 옮겨 나갔다. 필자도 뒤따라 구급차에 올라 같이 병원으로 향했다. 함께 있던 경로당 임원 몇 사람은 택시를 타고 구급차 뒤를 쫓아왔다. 

문제는 또 생겼다. 구급대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인근 병원 응급실과 계속 연락하며 가고 있는데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서 당혹해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거리가 조금 떨어진 B종합병원 응급실로 틀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후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A할머니를 비롯한 회원들과의 연락도 줄었다. A할머니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길에서 할머니의 아들과 마주쳤다. “갈비뼈 몇 개가 금이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할 말이 없었다. 가뜩이나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며 마음 조아리던 시간에 뼈에 금이 가서 입원했다는 말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아들의 입에서 “고맙습니다”하는 말이 나와 편치 못한 마음에 당혹감도 더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 A할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지만, 웃음으로 ‘회장님’ 하며 반겨주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올해 미수(米壽)가 되신 A할머니가 “어서 경로당에 나가야지” 하며 건강한 모습을 보일 때, 2년 전 심폐소생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심폐소생술은 이젠 경로당 회원들도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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