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9] ‘흑책정사’는 관리 임면을 문란하게 하는 것
[한국의전통色이야기 9] ‘흑책정사’는 관리 임면을 문란하게 하는 것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2.05.23 11:07
  • 호수 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흑책정사(黑冊政事)

흑책(黑冊)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검은 책이지만 한국사에 기록된 흑책(黑冊)은 전혀 다른 뜻이다. 

흑(黑)은 나쁜 뜻으로 많이 사용

동서양 모두 흑(黑)은 백(白)색과 비교하여 나쁜 뜻으로 사용된 기록이 많다. 예를 들면, 흑표(黑表)는 블랙리스트를 의미하고, 흑막정치(黑幕政治)는 소수의 사람이 뒤에서 조종하는 정치를 말한다. 지금은 대부분 검은 옷을 상복(喪服)으로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백색과 소복(素服)이 상복이었다. 

흑색(黑色)은 중국사신의 영접의례, 왕의 성혼, 즉위, 왕세자 책봉예식 등의 가례(嘉禮), 모든 국가 제례(祭禮: 제사), 관례(冠禮)나 혼례(婚禮) 등의 중요한 예식인 길례(吉禮)에 사용되었지만, 때로는 국상(國喪)을 포함하는 흉례(凶禮) 때에도 사용되었다. 

◎흑책(黑冊)은 아이들이 글자쓰기 연습용으로 만든 두꺼운 종이에 흑색을 칠하고 기름을 바른 검은색 판지(板紙)를 말한다.<黑冊者, 兒輩用厚紙, 黑而油之, 以習寫字 /고려사> 

흑책(黑冊)은 검은 책이란 뜻으로 사용된 기록은 없고 비유해서 전혀 다른 뜻으로 『고려사』와『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관리의 임면(任免)을 문란하게 하는 것을 흑책정사(黑冊政事)라고 말했다. 고려 충숙왕 16년 밀직사 김지경(密直金之鏡)이 인물을 심사하여 벼슬자리를 배정하는 일을 관장하면서 제수(除授)한 관직을 제멋대로 하여, 벼슬아치의 임명, 승진, 사면, 발령 등의 문서가 내려오면 권력을 마음대로 하는 자들이 서로 싸워가며 명단을 지우고 다시 고쳐서 정하므로 주(朱)색과 묵(墨: 먹)색을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흑책정사(黑冊政事)라고 불렀다. 

◎(......) 권신(權臣)들이 사적으로 정방(政房)을 설치하면서부터, (......) 과거로 선비를 뽑는 것도 따라서 문란해 졌다. 이에 흑책지방(黑冊之謗)과 분홍지초(粉紅之誚: 권문세가의 아동들이 과거에 많이 합격하는 것을 꾸짖음)가 한 동안 널리 퍼져 고려도 마침내 쇠퇴하게 되었다.<고려사> 

◎고려 말에는 흑책지정(黑冊之政)과 연호지정(烟戶之政)이 있었습니다. 오늘 사관(史官)의 붓을 가진 자가 전하의 이 일을 ‘충의위의 정치(忠義衛之政)다’ 라고 쓴다면, 만세(萬世) 후에 전하께서는 어떤 임금을 했다고 말하겠습니까?<연산군 3년 대사헌의 상소> 

법령을 자주 뜯어 고치는 것도 ‘흑책’

둘째, 법령을 자주 뜯어 고치거나 문서의 기록을 빈번히 개정한 것을 비유해서 흑책(黑冊)이 되었다고 말한다. 

◎“나라에는 『대전(大典)』외에 또 『속록(續錄)』이 있고, 『속록』 외에 또 『후속록(後續錄)』이 있어 삭제한 것이 반이라 이미 흑책(黑冊)이 되어서 시행할 수 없습니다. (......) 아침에 법을 세우고 저녁에 고치니(朝立暮更/조립모경), 저것이 옳고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감히 결정할 수 없으며, 또한 감히 받들어 시행할 수도 없습니다. 속된 말로 ‘조선의 법은 사흘 뿐(朝鮮之法三日而已)’이라고 말합니다. (......) 한 권의 책이 도리어 흑책(黑冊)이 되었으니 어떻게 이름을 국전(國典)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중종 10년 대사간의 상소문> 

◎“두 달 새 6번 수정한 누더기 언론법”<2021.9.1.동아일보> 

흑책정사(黑冊政事)와 흑책(黑冊)은 오늘날 더 심한지도 모를 일이다. 

정시화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