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대법 “연령 기준만 적용한 임금피크제는 위법” 판결 … ‘연령 차별’에 경각심 일깨워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대법 “연령 기준만 적용한 임금피크제는 위법” 판결 … ‘연령 차별’에 경각심 일깨워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2.05.30 09:51
  • 호수 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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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나이만을 기준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연령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년연장 등 다른 조건 없이 임금피크제만 도입한 기업들은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5월 26일 A씨가 과거 재직했던 B연구소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동안 하급심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나온 적은 있지만,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91년 B연구소에 입사한 A씨는 2014년 명예퇴직했다. B연구소는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성과연급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이에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이 2단계, 역량등급이 49단계 강등된 수준의 기본급을 지급받아 수당과 상여금, 퇴직금, 명예퇴직금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인 1억8339만원 상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B연구소는 만 55세 이상 직원들의 수주 목표 대비 실적 달성률이 떨어져 55세 미만 직원들과 차등을 둘 이유가 있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퇴직 평균 연령이 상승하는 등 정년 보장 효과가 있어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 전 노동조합과 장기간 협의를 거쳐 충분히 의견 수렴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B연구소의 임금피크제가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하지 못하게 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4’를 위반했는지 여부다. 

앞서 1심 재판부는 B연구소의 임금피크제가 사실상 만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의 급여를 삭감하는 내용이고, 노조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임금피크제 내용 자체가 법에 반해 효력이 없다고 봤다. 2심도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후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는데,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B연구소의 인건비 부담 완화 등 경영 제고를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며 “이러한 목적은 55세 이상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 삭감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A씨가 임금이 일시에 대폭 하락하는 불이익을 입었음에도 적정한 대상 조치가 강구되지 않았고,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B연구소가 A씨에게 적용한 임금피크제는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해 무효”라고 했다.

이날 판결은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가린 첫 판례다. 대법원도 이를 의식한 듯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라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번 사건과 다르게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 여부는 다양한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가령 △임금피크제 도입목적의 정당성 및 필요성 △실질적 임금삭감의 폭이나 기간 △대상 조치의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도입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에 따라 임금피크제에 대한 유·무효 여부가 달라진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임금피크제는 지난 2000년대 들어 청년일자리를 확대해 세대 간 상생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도입된 제도다. 2016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절반에 가까운 46%에 달한다.

이번 판결에 따라 삼성, LG, 롯데, 포스코 등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성격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 내 근로자들이 임금 소송을 청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령에 따라 일률적으로 임금을 깎는 게 근로자에게 불리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준과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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