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우리가 올해 여름을 즐겨야 할 이유 / 이호선
[백세시대 금요칼럼] 우리가 올해 여름을 즐겨야 할 이유 / 이호선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22.06.13 10:56
  • 호수 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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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여름밤 옥상에 돗자리 깔고 눕던

어린 시절 기억은 아련하기만 해

징그럽게 더울 이번 여름도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

남은 청춘의 기쁨을 만끽하자

덥다 못해 두려운 여름이 오고 있다. 무더위는 마치 거대한 거인처럼 덮치듯 몰려온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50도에 육박할 것이라는 이야기나 우리나라는 어디가 몇 도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기상예보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삼복더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 했던가, 이번 여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옛날 원두막에서 수박 잘라먹고 밤엔 모깃불을 피워놓고 부채질하며 방학을 보내던 시절에는 30도만 올라가도 난리였다. 집집마다 TV가 생기면서 전국의 피서지를 소개하며 이어지는 차량이 꼬리를 무는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채우곤 했다. 기상이변이니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느니 하면서. 요즘 기상예보를 듣다 보면 정말이지 날씨가 왜이러나 모르겠다.

그 옛날 어린 시절 더운 여름이면 집 마당에 돗자리 하나 깔고 이불 펴고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고, 새벽이슬에 이불이 축축해지면 이불을 둘둘 말고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아파트에서도 더운 날이면 선풍기뿐인 좁은 집에서 나와 그나마 선선한 옥상에 올라갔고, 막상 올라가 보면 명당은 이미 다른 집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꺼내온 과자와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애어른 할 것 없이 이야기꽃과 모기향을 동시에 피웠던 그 시절, 낮엔 도로에 밤엔 마당과 옥상에 피서 행렬이었다. 그땐 그랬다.

요즘엔 30도는 기본이고 2018년 8월 1일 홍천이 40.3도로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하며 입이 떡 벌어지게 했고, 그만큼은 아니라도 매년 고온이 이어지고 열대야로 밤잠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35도쯤은 그런가보다 한다. 

올해는 얼마나 더우려나 생각하며 새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 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부채만 있던 시절과 선풍기 시절을 지나 이젠 에어컨, 그것도 시스템 에어컨이 있고, 동네마다 무더위 쉼터가 있으니 더위로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일이야 많지 않지만, 땡볕을 넘어 도시는 온통 열섬이 된다. 도시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라 대장간 풀무가 따로 없다.

아이스박스에 아이스께끼를 메고 다니며 팔던 시절을 지나, 냉장고에 얼음을 얼려먹는 세상이 오더니, 이젠 냉장고가 정보도 알려주고 툭 치면 속이 훤히 보이는 냉장고도 나왔다. 냉장고에 정수기가 달려있기도 하고 얼음이 후루룩 쏟아지기도 한다. 

거리에서는 아이스크림이 31가지나 있다는 가게도 있고, 마트마다 허연 냉기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호객한다. 은행에 들어가면 났던 땀도 쑥 들어가고, 동사무소에도 어르신들이 의자에 앉아 아픈 다리도 쉬게 하고 땀범벅이 된 몸도 말릴 수 있다. 풍요의 시절이라 땀도 빠르게 휘발한다. 

원두막 시절도 가고, 옥상 돗자리 기억도 지났다. 아이스께끼를 아껴먹으려 혀로 핥아먹던 시절도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우리의 어린 시절도 지나갔다. 이제는 더워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계단도 겁나는 데 옥상에서 자는 날엔 다음날 관절 통증과 몸살을 각오해야 한다. 

아이스크림은 언제 먹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 우리는 어느덧 이 나이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과 추억을 돌이켜보면, 그때를 더 만끽했어야 했다. 젊은 시절,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끽’하며 살아보겠다. 못해본 것을 꼭 해보겠다며 로또 상상하듯 기억으로 헛 손짓을 해본다. 

오십견이 괴롭고, 관절통이 힘들며, 기억력도 점점 나빠지는 것같은 요즘, 달라지는 세상과 나이 드는 우리를 생각해보면 그나마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오십견도 없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걸을 수 없는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이 가장 젊고 좋은 날이라는 말은 참말이다. 그러니 오늘 가장 소중한 나의 젊음의 소수점 이하 시간까지 읽어보자. 

늙었으나 덜 늙은 나에게 말해보자. 갱년기도 즐겨보자. 관절 통증도 신통하게 생각해보자. 깜빡거리는 기억도 귀여워해 주자. 갱년기가, 관절 통증이, 건망증이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겠는가? 남아있는 이 청춘의 기쁨을 만끽하자. 그러니 징그럽게 더울 이번 여름도 만족스럽게 즐기자. 장담하건데 올여름은 우리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의 여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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