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 아기 버린 미혼모, 왜 영아 밀매 브로커와 손잡았나
영화 ‘브로커’… 아기 버린 미혼모, 왜 영아 밀매 브로커와 손잡았나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6.13 13:40
  • 호수 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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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에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이번 작품은 영아 밀매 브로커와 미혼모가 아이를 매매하기 위해 떠도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 생명의 의미를 조명한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배우 송강호에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이번 작품은 영아 밀매 브로커와 미혼모가 아이를 매매하기 위해 떠도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 생명의 의미를 조명한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송강호‧아이유‧배두나 등 출연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사회적 약자에 따뜻한 시선 인상적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한 여성이 갓난아이를 안고 장대비를 맞으며 걷다 한 ‘베이비 박스’(키울 수 없는 아이를 맡기는 곳) 앞에 멈춰 선다. 고민하던 그녀, ‘소영’(아이유 분)은 자신의 피붙이를 박스 안이 아닌 찬 바닥에 놔두고 돌아선다. 이때 소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영아 밀매를 수사하던 형사 ‘수진’(배두나 분)이었다. 수진은 소영의 이기적인 행동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며 아이를 박스 안에 넣어 둔다. 다음날 마음이 바뀐 소영은 아이를 찾으러 돌아오지만 아이는 영아 밀매 브로커 ‘상현’(송강호 분)이 데리고 간 뒤였다. 그리고 그녀는 상현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고 결말을 알 수 없는 여정에 오른다. 영화 ‘브로커’는 이렇게 시작한다.

송강호에게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영화 ‘브로커’가 6월 8일 개봉했다. 이번 작품은 칸 영화제 감독상을 비롯, 내로라하는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을 거머쥔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을 맡고 송강호를 비롯해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등 국내 영화계 신구스타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영아 밀매 브로커인 ‘상현’과 보육원 출신이자 베이비 박스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는 소영의 아이를 밀매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소영은 두 사람의 이런 계획을 경찰에 알리려 한다. 이에 상현과 동수는 아이를 잘 키울 적임자를 찾으려고 했다고 변명하면서 자신들의 계획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처음엔 불신하던 소영도 돈도 벌 수 있고 아기가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 낡은 봉고차를 타고 이들과의 동행에 나선다. 여기에 동수가 자란 보육원에서 만난 7살 아이 ‘해진’까지 합류하면서 작은 봉고차는 더욱 북적거리게 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영아 밀매가 이뤄진다는 첩보를 입수한 형사 ‘수진’과 후배 ‘이 형사’(이주영 분)는 이들을 현행범으로 붙잡아 반 년간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뒤를 쫓는다. 이렇게 아기와 아기를 팔려는 사람들, 그리고 아기 엄마, 그 뒤를 쫓는 경찰들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의 형태를 넓게 확대한 ‘대안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2004)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슬픈 생존기를 담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를 키우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가족을 통해 혈육과 양육 사이에 놓인 가족의 유대 관계를 탐색했다. 또 ‘어느 가족’(2018)은 제도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유사 가족 이야기를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이번 작품 속 상현 일행도 ‘영아 밀매’라는 어두운 목적과 달리 여행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확대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의 핵심 소재인 영아 밀매는 완전한 중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현 일행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이 확신은 의문으로 바뀐다. 법대로 버려진 아이를 보육원에 맡겨 결핍된 상태로 살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인가, 아니면 중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풍족한 가정에 아이를 보내는 것, 즉 선의를 가진 범법이 옳은가를 묻는다. 

이러한 연출 의도는 수진의 심경변화에서도 잘 찾아볼 수 있다. 상현 일행의 활동을 관촬해온 수진은 처음에는 그들을 명백한 범죄자로 단정했다. 그러다 그들의 여정을 뒤쫓고 관찰하면서 점점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갈등한다. 영아 밀매가 범죄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아이를 사고팔 수밖에 없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사연 그리고 그들을 방치하게 만드는 사회의 편견과 제도의 공백에 심적으로 흔들린다. 

결국 수진은 어쩌면 그들을 편협한 시선으로 매도하는 자신이야말로 악당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수진의 심경변화는 사회적 약자인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현 제도가 최선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고 관객들로 하여금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배우들의 호연과 만나 선명히 부각된다. 특히 송강호는 왜 칸이 그를 선택했는지를 뚜렷이 보여준다. ‘기생충’에서 보여준 것처럼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만 자상함과 따뜻함을 가지고 위트를 잊지 않은 아버지상을 연출한다. 몸을 팔아 연명하다 끝내 미혼모가 된 소영에게 “굳이 뭐 혼자 다 할 필요가 없어”라고 격려하는 신은 이 영화의 잊지 못할 장면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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