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이 ‘노인이 되어봤더니…’
30대 젊은이 ‘노인이 되어봤더니…’
  • 관리자
  • 승인 2006.08.29 1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년을 이해하자” 한목소리

특수장비 통해 80세 생활체험 ‘모든 게 불편’
시력 청력 운동능력 감퇴 세상과 격리된 기분

 

지난 20일 오후 3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체험 프로그램에 도전하겠다며 의기양양하게 찾아간 터였다. 새로운 취재거리에 적잖이 흥분해 있던 기자의 발걸음은 지하 3층 강의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뿐히 밟고 내려섰다.

강의실에는 이 병원 간호부 교육담당 신연희 과장과 노인전문코디네이터 박명숙 간호사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노인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끝난 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네모난 가방에서 드디어 체험 장비가 꺼내졌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체험현장 르포

 

기자의 체험을 도와준 박명숙 간호사는 “80세 허약한 노인의 신체상태를 기준,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체험 장비”라고 귀띔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는 탓에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다. 한 세트 150만원으로, 값도 비싸다. 장비는 크게 7가지로 구성돼 있었다.

 

부피가 가장 큰 등보호대가 먼저 채워졌다. 노인은 골밀도가 감소하고 척추 추간판이 얇아지면서 등과 목이 굽고 키도 작아진다. 이 같은 상태에 맞춰 제작된 등보호대를 입었더니 실제로 등이 구부정해졌다. 뒷목까지 닿는 보호대가 목을 뒤로 젖히는 것도 힘들게 만들었다.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기자도 10여분이 지나자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두번째 장비는 팔꿈치와 무릎에 채워지는 관절제한장치. 오금과 팔꿈치 안쪽에 단단한 재질의 판을 덧대어 팔 다리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나이가 들면서 연골이 마모되고 형태가 변하면서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관절을 가정한 장치다. 관절제한장치와 함께 발목에는 1kg, 손목 500g의 모래주머니가 채워져 근섬유의 크기와 양이 줄어 근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체험하도록 했다.

 

스키고글처럼 생긴 안경을 썼더니 앞이 노랗게 보였다. 특히 시야가 좁아 양 옆과 위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정면을 주시하고도 상하좌우 약 100도 이내에 놓인 사물이 보이지만 특수 안경은 위 60도, 아래 70도 정도만 보이도록 고안했다. “80세가 되면 실제로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는 박 간호사의 설명이 뒤따랐다.

 

박명숙 간호사는 “홍채가 노화되면 두께가 두꺼워지고 초점조절능력도 떨어져 눈으로부터 25~30cm 이내에 놓인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게 된다”고 일러주었다. 또 “노란색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사물이 누렇게 보이고, 동공 크기도 작아져 망막에 전달되는 빛의 양이 줄면서 정상보다 3배나 많은 빛을 필요로 하게 된다”고 했다.

 

둔감한 촉감을 대신하도록 손에는 면장갑과 수축밴드를 덧끼웠다. 박 간호사는 “나이가 들면 신경 통합능력도 떨어져 물리치료 중 뜨거운 찜질 팩을 감지하지 못해 화상을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주변 환경 적응능력도 떨어져 이사 등 갑작스런 환경변화가 닥치면 집안에 갇히는 결과를 낳는다”며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경우 이사는 가급적 안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스펀지 재질의 귀마개를 끼워 청력을 떨어뜨렸다. 노인들은 고막진동 근육이 위축되고 청신경이 노쇠해 소리를 잘 듣지 못하게 된다.

 

박 간호사는 “청력이 좋지 않은 노인에게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는 잘못된 행동”이라며 “노화에 따른 청력손실은 고음부터 시작해 중·저음으로 이어지므로 무조건 소리를 높이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장비를 모두 착용하자 박명숙 간호사가 네모난 색지를 들이댔다.

 

“어떤 색으로 보이세요 ”

 

“진한 녹색입니다.”

 

“이건 무슨 색으로 보이세요 ”

 

“연두색입니다.”

 

그러나 고글을 벗고 확인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진한 녹색은 실제 파랑색이었고, 연두색 종이는 녹색이었다.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황반변색증의 결과다. 언젠가 빨간불이 켜져 있는데도 횡단보도에 들어서는 노인을 보고 ‘부도덕하다’고 매도한 기억이 떠올랐다. 색깔 구분이 어려우니 지나는 차가 없을 때 길을 건너려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팡이를 쥐고 본격적인 체험에 나섰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체험 전 강의실을 나와 화장실까지 다녀왔건만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거들어주던 간호사가 없었다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상황. 머릿속에는 열심히 길을 찾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누런 벽뿐이었다. 충격이었다.

 

어눌한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을 때 박명숙 간호사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80대 어르신이 걷고 있는 모습이네요, 느껴지나요 ”

 

아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발을 떼기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느릿느릿 힘들게 발을 떼는 노인처럼 보인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노인들은 왜 한결같이 걸음이 느린 것일까’ ‘왜 좀더 빨리 걷지 않는 것일까.’ 그랬다. 이전에는 바쁜 걸음을 가로막는 노인들의 느린 걸음을 습관처럼 힐난했었다.

 

하지만 장비를 착용한 채 복도를 걷고 있는 기자가 다른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길을 가다 마음속으로 손가락질했던 수많은 어르신들께 일일이 전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정말 죄송합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발을 들어 첫번째 계단을 밟아야 하지만 고개를 깊이 숙이지 않고는 보이지 않았다. 왼손에 쥔 지팡이로 더듬거려 계단을 느꼈다. 옆에서 부축하고 있던 박 간호사가 계단 손잡이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옆에 놓인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다! 말이 되는가, 손잡이가 보이지 않다니. 오른손으로 더듬거리고 나서야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다.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는 사이 등에 땀이 흘렀다. 불과 30분전 가뿐히 밟고 내려선 그 계단이 아닌 듯 했다. ‘이렇게 가파른 계단이었던가.’ 발을 헛딛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뒤에서 따라 오르는 서너명의 병원직원들에게 미안했다.

 

마음은 두 계단씩 훌쩍 훌쩍 뛰어오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옆으로 비켜주고도 싶었지만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숨도 가빠졌다. 말 그대로 진땀이 흘렀다. 육교를, 아파트 계단을, 비탈진 동네 골목길을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오르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계단을 내려올 때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한발만 헛디뎌도 10여m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상황.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차라리 양손으로 계단손잡이를 잡는 게 나을 듯 했다.

 

노인체험 전, 에스컬레이터는 참으로 편리한 장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만든 사람에게 노벨상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체험 장비를 입고 80대 노인이 됐더니 에스컬레이터는 끔찍한 흉기였다. 발 앞에 놓인 계단을 오르기도 어려운 판국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걸음을 옮긴다는 것은 너무 벅찬 숙제였다.

 

손잡이마저 빨리 오르라며 재촉하듯 돌고 또 돌았다. 잠시 멈칫하다 발을 올린 뒤 발바닥 중간에 계단이 걸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계단 가운데 부분을 밟지 못했다. 계단 모서리는 왜 그리도 뾰족하게 만들었는지.

 

병원 로비에서 입원서류를 써 보았다.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자 한 자 그리듯 이름과 주소를 적을 수밖에 없었다.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우니 칸에 맞게 쓰려 해도 자꾸만 글씨가 커졌다.

 

병원 정문을 나섰다. 손잡이를 찾아 더듬거리는 행동이 이제는 익숙했다. 그런데 옆문을 밀어 제치고 홱 들어서는 젊은이들이 왜 그토록 무섭게 느껴졌을까. 앞서 나간 젊은이가 무심코 놓아버린 출입문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돌진해 들어올 때는 ‘노인체험하다 응급실로 실려 가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버스에 올라보았다. 노인들에게는 버스 계단 단차가 너무 높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손잡이도 너무 높은 곳에 달렸다. 계단 손잡이처럼 고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고 힘들게 오르는 모양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버스에 오르내리는 노인들 때문에 출발이 늦다며 짜증을 냈던 것이 어제의 일이었다.

 

횡단보도는 사선(死線)이었다. 고개를 완전히 돌리지 않으면 옆에서 다가오는 차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공포심이 찾아들었다. 멈추지 않는 자동차들 때문이었다. 앞으로 쏜살같이 지나는 자동차의 운전자를 끌어내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무엇이 그리 바쁜가.

 

노인체험. 한 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말하고, 듣고, 보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세상과 격리된 듯한 소외감,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공포, 젊은이들 편한대로 만들어놓은 시설들…. 노인체험 장비를 착용한 채 1주일을 살아야 한다면…. 병원을 나서는 길, 머릿속은 우울한 상념들도 가득 채워졌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

 

노년기 건강은 ‘자기 하기 나름’

강한 의지로 적당히 운동하는 습관 필요
퇴행성관절염에는 비스테로이드 약 좋아


박명숙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노인전문코디네이터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질병 없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반면 60대 초반에 당뇨, 고혈압, 각종 만성질환으로 일 년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내는 노인도 있다.

 

뇌졸중이라도 꾸준한 운동과 약물치료를 통해 지팡이는 짚었지만 혼자 병원을 방문하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오랜 흡연으로 폐질환에 걸려 집안에서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면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노년기의 건강상태는 전적으로 ‘자기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각자 상황은 달라도 행복한 표정을 가진 어르신들이나 가족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솔깃하거나 섭섭하게 대하는 자녀들을 원망하는 대신 자기 소신대로 생활한다는 것이다.

 

금연, 주3회 이상 꾸준한 운동, 고른 영양분 섭취, 처방 받은 약의 꾸준한 복용,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긍정적인 마음 등 지극히 간단한 내용만 잘 실천해도 건강한 노년은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노년기에 가장 흔하게 앓는 질환이 퇴행성관절염이다. 흔히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어르신들은 ‘연골이 닳아서 아프기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무릎에는 관절과 연골을 받쳐주는 근육이 있다. 나이가 들면 다리 근육이 가장 먼저 지방세포로 바뀌므로 관절을 받쳐주는 지렛대가 약해진다. 근육이 약하면 뼈와 뼈는 더욱 밀착돼 서로 부딪치게 되므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걷거나 ‘태극권(타이치)’과 같은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또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먹은 약 중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것은 얼굴이 달덩이같이 부어오르는 ‘쿠싱증후군’이라는 무서운 합병증을 일으키기도한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일명 ‘밥맛 나는 약’으로 알려져 과용하기 쉽다.

 

스테로이드는 소량으로 짧은 기간 동안만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모르고 장기 복용하게 되면 뼈에 구멍이 나서 쉽게 골절되는 골다공증과 당뇨 등을 유발하게 된다.

 

따라서 관절이 아플 때는 ‘파스’와 같은 국소적 효과를 나타내는 약을 쓰거나 통증이 있을 때만 의사처방에 따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도 속이 쓰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식사 후에 복용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다. 비록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도 가족, 친구, 이웃들을 칭찬하며 감사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다면 치매를 예방하는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건강한 노년은 노신사(老紳士), 노숙녀(老淑女)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지름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