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남의 것을 내것처럼… 황당한 얌체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남의 것을 내것처럼… 황당한 얌체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7.04 10:24
  • 호수 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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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아주머니 바깥 수도에서 물이 안 나오는데요.”

몇 해 전 강원도 강릉의 한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었다. 필자는 바다 앞 한 펜션에 머물며 여름휴가를 즐겼다. 그러다 백사장을 산책하고 돌아와 펜션 내 설치된 수도(水道)로 발에 묻은 모래를 씻으려 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펜션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에게 여쭤보니 돌아온 답은 이랬다.

“펜션에 묵지도 않는 사람들이 맘대로 물을 써서 잠가놨어요. 요금도 몇 배 씩 더 나오고.”

요금에 관한 부분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있겠지만 실제로 펜션에 머무는 동안 투숙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몇몇 목격했다. 남의 집 물을 몰래 쓰는 일종의 경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딱히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당당하게 수도꼭지를 돌렸고 물이 나오지 않는 것에 일부는 짜증을 내기도 했다.

지난 6월 26일 강원 고성에서는 일명 ‘고성 카니발’ 사건으로 불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성인남성 3명, 성인여성 1명, 아이 2명으로 구성된 무리가 물놀이를 즐긴 후 여성 혼자 거주하는 집 화장실을 몰래 이용하고 도망친 것이다. 해당 화장실에는 샴푸 등 각종 샤워 도구가 구비돼 있었는데 이를 맘대로 쓴 데다가 뒷정리도 하지 않고 사용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떠났다. 특히 어이없는 건 쓰레기까지 무단투기하고 갔다는 점이다. 이를 발견한 주인은 쓰레기가 아니라 화장실을 이용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선물인 줄 알았다고 한다. 해당 집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면 완전범죄가 될 뻔한 사건이다.

‘얌체’라는 우리말이 있다.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란 뜻을 가진 ‘염치’(廉恥)의 작은말 ‘얌치’에서 파생된 말이다. 얌체라 하면 ‘염치가 없는 사람’ 즉, 거리낌 없이 자기 이익만 따져서 행동하는 사람이나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

‘고성 카니발’ 사건의 가담자들이 살인‧강간‧사기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또한 심각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해당 집에 거주하는 여성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겼다. 가장 안전함을 느껴야 할 장소가 남에 의해 언제든 더럽혀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준 것이다. 피해 여성이 거주지를 떠나 가족의 품으로 피신할 정도로 말이다. 

내 멋대로 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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