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환자가 중심이 되는 진료로 패러다임 전환을 / 김광일
[백세시대 금요칼럼] 환자가 중심이 되는 진료로 패러다임 전환을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 승인 2022.07.11 10:43
  • 호수 8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부모가 암 등 중병에 걸린 사실

환자에 숨기려는 자녀들 많아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권리

자신에 맞는 치료 선택권 있어

이를 위한 충분한 진료시간 필요

노인병내과 의사가 담당하는 진료 중 하나는 고령의 암 환자가 수술이나 항암요법을 잘 받을 수 있는지 평가하고 치료 후에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서, 암을 처음 진단받은 고령의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요즈음에는 고령의 환자에서도 수술과 항암치료로 암이 완치되는 경우가 많고, 복강경이나 로봇수술로 수술 상처가 크지 않으며, 항암제도 부작용이 많이 줄어들어, 적극적으로 수술 또는 항암치료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만큼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에 가족분이 먼저 방으로 들어와서 환자가 아직 암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특별히 주의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들 생각으로는 고령의 부모님이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아 치료를 거부할 수 있고, 또 중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환자에게 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절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병에 대해 올바르게 알아야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일을 준비할 수 있고 치료 방법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치료받을 권리만큼 중요한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는 검사나 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인데, 자신의 병 상태를 올바르게 알지 못함으로써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고령의 환자가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경우 수술, 방사선 치료, 약물치료 그리고 치료 없이 경과관찰을 하는 방법 중에 하나를 추천하게 된다. 질병의 특성과 환자의 건강 상태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담당 의사가 가장 적절한 방법을 우선적으로 추천하지만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는 환자의 의견을 반드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 

환자가 치료에 따른 합병증의 위험이 있어도 완치를 바라는지, 아니면 암이 진행되어 악화될 위험이 있더라도 배뇨장애나 요실금 등의 치료 합병증이 생기는 것을 더 염려하여 치료 없이 경과를 관찰하는 것을 선호하는지를 알아보고 그 선택을 존중하여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전통적인 의사-환자 관계는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는 이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의사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 의사가 전문적인 식견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이를 환자가 수동적으로 따르는 식이다. 

하지만 노년기 질병에 대한 접근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고령의 환자는 질병이 완치된다고 하더라도 삶의 질이나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 남은 여생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자가 우선적으로 선호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개념이 ‘환자 중심 진료’로서 환자 개인의 선호, 필요와 가치를 존중하고 그에 맞는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임상적 의사결정에 환자의 가치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으로 환자는 치료과정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삶의 질과 기능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치료계획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렇다면, 환자가 중심이 되는 진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환자 중심 진료가 가능하려면 먼저 의료인은 환자의 질병 상태에 대해 환자와 가족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병의 상태, 예후, 치료과정을 설명해주어 환자와 가족이 현재의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의사들은 환자의 선호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해야 하며 환자의 관점과 선택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야 한다. 예전처럼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는 무조건적으로 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질병 상태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바탕으로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선호도를 파악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겠다. 

암과 같은 중병을 진단받았을 때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질병을 완벽하게 치료해 재발의 위험을 낮추는 것인지 아니면 치료와 관련된 합병증의 발생이 더 염려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환자와 가족은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하며 이전처럼 의사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면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선호도를 명확하게 표현함으로써 최선의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진료시간과 다학제 진료가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현재와 같은 3분 진료로는 환자가 중심이 되는 진료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어도 20~30분의 진료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며, 관련된 전문의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환자와 가족이 결정할 수 있는 다학제 진료가 수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환자 중심 진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진료실에서 환자분께 치료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면 그냥 의사가 결정한 대로 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노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절대로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미리 생각해보고 정리해 놓는다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해답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