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13] 탐묵지풍(貪墨之風)은 뇌물을 받는 풍조를 가리켜
[한국의전통色이야기 13] 탐묵지풍(貪墨之風)은 뇌물을 받는 풍조를 가리켜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2.07.18 11:53
  • 호수 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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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으로서 묵색(墨色: 먹색)은 한국사에 철릭(天益 또는 天翼: 무관들이 입던 관복), 원령포(圓領袍), 면단(綿段)과 같은 옷이나 비단의 색명으로 기록되거나, 먹으로 쓴 글씨의 농담, 어진(御眞: 임금초상화)의 검은 눈동자(黑精, 흑정)와 눈썹 끝의 묽은 묵색(墨色), 환자의 묵색 부기(浮氣), 사람 이름(예: 墨胡子, 묵호자) 등으로 기록되었다. 

지(紙)‧필(筆)‧묵(墨)‧연(硯)은 왕조시대에는 필수 불가결한 물건으로서 전통문화의 핵심 요소이다. 이 중에서 묵(墨: 먹)은 만들기도 어렵고 그 발색이 미묘해서 특히 왕실에서 사용되는 것은 그 품질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 이 어필(御筆: 임금의 글씨)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묵색(墨色)이 새것과 같으니 기이한 일이다. (......) 이것은 선조께서 승하하시기 3년 전에 쓰신 것이다.<영조 26년> 

◎묵색(墨色)이 전부 묽어 샅샅이 살펴보니 분명히 송연(松煙: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이라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현종 6년> 

◎신의왕후의 위판(位版)은 묵색이 희미하고 광택이 없다.<숙종 원년> 

◎지금 이 어필(御筆)은 몇 년이 지나도 묵색(墨色)이 새것과 같다.<영조 26년> 

묵색은 비유적으로 많이 사용

묵색(墨色)은 이처럼 글자 색깔 외에 비유(은유)적으로도 사용되었다. 묵색(墨色)은 문자 그대로 먹물의 검은색(黑)이고, 탐(貪)은 탐낸다는 뜻으로 욕심이 많고 하는 짓이 더러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탐묵지풍(貪墨之風)은 뇌물을 받는 풍조를 말한다. 

◎비목(批目)이 내려오면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 다투어 지우면서 마음대로 정하니 본래의 주(朱)색과 묵(墨)색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려 충숙왕 16년>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전국에 내 건 방문(榜文)에 기강이 크게 무너지고 탐묵(貪墨)풍조가 생겨<고려사 신돈>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예의염치(禮義廉恥)입니다. (......) 그러나 어쩌다가 용렬한 무리들이 탐묵(貪墨)을 자행해서 청렴하고 깨끗한 기풍에 누를 끼치니, 진실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태종 15년> 

◎겉으로는 청렴함을 꾸미고 있으나 속으로는 탐묵(貪墨)을 품고 있어, (......) 매관매직하며 송사를 판결하는 관리를 마음대로 지시하여<세종 8년> 

◎기강을 펼치지 못하고 탐묵(貪墨)이 제멋대로 자행하여 잘못 없는 백성만 슬퍼하며 편하게 살 수 없게 한 것은 그 원인을 헤아려 본다면 경(卿)이 홀로 책임을 져야 하겠는가<고종 30년> 

◎재직 중에 탐묵(貪墨)한 자는 규례대로 판결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종 35년> 이밖에도 발거(拔去: 뽑아버림)탐묵(貪墨), 탐묵상상(相尙: 서로자랑), 탐묵도철(饕餮: 몹시 욕심을 냄), 탐묵지익치(之益熾: 기세가 더욱 심함), 탐묵사행(肆行: 유행), 탐묵성풍(成風: 풍속을 이룸), 탐묵자행(恣行: 제멋대로 행함), 탐묵징창(懲創: 뉘우치도록 벌을 주거나 꾸짖어서 경계), 탐묵낭자(狼藉: 여기 저기 흩어져 어지러움) 등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1000여회 정도 탐묵(貪墨)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뇌물풍조(貪墨之風)가 심했던 것 같다. 고려, 조선시대뿐이겠는가. 지금이 오히려 더 심할지도 모른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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