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2.08.08 11:17
  • 호수 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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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노년기엔 친구들 많이 만나고

적극적인 사회생활이 좋지만

때론 혼자만의 시간 보내고

혼자만의 여행 떠나는 것도 필요

스스로 찾는 고독은 행복의 비결

나는 가끔 혼자 짧은 여행을 한다. 처음엔 망설여지지만 곧 누리게 될 자유함을 기대하며 마음이 들뜬다. 목적지만 정해놓고 거기 머무는 기간이나 볼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은퇴하여 시간 제약을 덜 받게 되니 그런 무계획적인 여행이 더 가능해진 것 같다. 

오래전 혼자 갔던 여행이 있다. 군대 제대하고 취업하기 전 지리산 등반을 계획했다. 같이 갈 친구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아 혼자 가기로 했다. 좀 외롭겠지만 혼자 가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쌍계사를 통해 천왕봉에 올랐다. 취사·취침 도구를 넣은 배낭을 메고 3박 4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만들어졌다.  

정말 좋았던 것은 혼자 걸으면서 지나치는 나무, 돌맹이, 계곡물 하나하나가 모두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들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으며,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 묻고 대답하였다. 귓전을 가볍게 스치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하였다. 땅과 하늘은 오케스트라 공연장이다. 

자연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펴니 혼자 가는 등산이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여럿이 갔으면 느끼지 못할 독특한 경험이었다. 결혼하니 그런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아들 둘은 내 권유로 대학생 때 각기 혼자서 지리산을 다녀왔다.

올봄 아무 약속이 없는 주간이 있었다. 해방감이 들었다. 태백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 예수원을 며칠 방문하기로 예약을 했다. 가는 길에 오랫동안의 로망인 차박(車泊)을 해보기로 했다. 나이 70에 혼자 차박한다니 친구들은 용기가 가상타고 했다. 등산과 차박을 위한 간단한 준비는 미리 해두었다. SUV는 뒷좌석을 앞으로 젖히면 침실 공간이 만들어진다. 

첫날 밤은 양평 S리조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식사와 용변은 그 안의 시설을 이용해 해결했다. 유명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도시살이로 탁해진 머리가 맑아진다. 

둘째 날 밤은 태백산 입구 당골광장에 주차하고 편의점과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다. 광장 가운데서 밤새 주룩주룩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잤다. 잠자리가 별로 불편하지 않은데다 자연과의 일치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전신의 세포가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인근 온천에 몸을 담그면서, 중학교 때 시골 할머니 집을 혼자 다녔던 일이며 고등학교 때 감행했던 무전여행 등 어릴 때부터 혼자 다녔던 여행들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자연과 세상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역시 혼자 다니는 게 좋다! 

젊은이의 고독은 낭만적이고 늙은이의 고독은 처량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노년기엔 가급적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사회생활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좋다.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거나 없어지는 노년기에 사회활동 참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긍심을 향상시킨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밖으로 나다니는 것은 오히려 고독을 키울 뿐이다. 때론 세상과 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게 마음 편한 경우가 있다. 인생의 의미나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노년의 풍요로움은 활동이론(Activity Theory)과 분리이론(Disengagement Theory)에 입각한 생활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달성된다.

인간은 혼자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과 스승과 친구를 만나 인연을 맺어 살다가, 결국 혼자 세상을 떠나는 존재이다. 가족을 만나 정을 나누며 행복을 누리고, 스승을 만나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그리고 친구를 만나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한다. 여럿이 더불어 살지만 따지고 보면 ‘나’를 찾아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지금-여기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세월이 지나면 결국 신의 뜻에 따라 더 크고 온전한 ‘나’를 찾아 홀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간다.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엔 창의성이 자극된다. 노년기의 창의성이란 나이 들었어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나 문학·예술 활동은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준다. 창의성 중 가장 고상한 것은 종교적 신앙에 침잠하는 것이다. 종교는 인생에 대한 관점을 물질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 시각에서,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킨다. 

종교란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고단한 인생 여정에서 궁극적으로 참된 것을 추구하면서 진정한 희망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다. 노년기에 스스로 찾는 고독은 행복의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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