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78] 고우(苦雨)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78] 고우(苦雨)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 승인 2022.08.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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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苦雨)

모든 일에는 중도가 귀하거니

즐거움의 끝에는 슬픔 또한 생기는 법

홍범(洪範)에 비 오고 볕 나는 것은 길흉의 징험이니

너무 없고 너무 많은 것 전부 흉하다고 하였지

가물 때는 비가 그리워 많이 와도 싫지 않다가

막상 많이 올 때는 그 근심은 또 어떠한가

농가에서 백로에 비 오는 것 가장 두려우니

한 뙈기 땅에도 지나치면 벼가 상한다네

조물주의 심한 장난이 어찌 편벽되었단 말인가

내 구름 타고 올라가 하늘에 고하여

비렴에게 짙은 구름 쓸어버리게 하고는

지팡이 짚고 외곽으로 나가 싱그러운 광경 보고 싶다네

萬事中爲貴 (만사중위귀)

樂極亦生哀 (락극역생애)

箕疇雨暘叙休咎 (기주우양서휴구)

極無極備均㐫哉 (극무극비균흉재)

旱時思雨不厭多 (한시사우불염다)

及到多時悶又何 (급도다시민우하)

農家最怕白露雨 (농가최파백로우)

差過一犂損稼禾 (차과일리손가화)

造兒劇戱一何偏 (조아극희일하편) 

我欲梯雲上問天 (아욕제운상문천)

詔使蜚廉掃宿霧 (조사비렴소숙무)

杖藜出郭覩晴新 (장려출곽도청신)

- 오횡묵(吳宖默, 1834~1906) 《총쇄(叢瑣)》 5책 詩


과거 우리 조상들은 비에 여러 이름을 붙이곤 하였다. 계절 명을 붙인 춘우(春雨), 추우(秋雨) 뿐만 아니라, 매실이 익을 무렵에 오는 비를 매우(梅雨)라고 하는 등 시기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있었다. 또 상황에 따른 명칭도 있었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는 단비를 희우(喜雨)라고 하였고, 장마가 오래되어 지나치게 오는 비를 음우(淫雨)라고 하였다. 또 한해 농사일을 망칠 만큼 모질게 오는 비는 ‘고통스러운 비’라는 의미로 고우(苦雨)라고 하였다.

이 시를 지은 오횡묵(吳宖默)은 무과에 급제하여 관로에 들어선 후 정선, 자인, 함안, 고성, 지도 등 10여 지역의 수령을 지냈다. 위 시는 그가 함안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지은 작품이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배경은 가을걷이를 할 때인 백로(白露) 무렵으로 보인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농사에 치명적이다. (중략)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는 정치의 득실과 국가의 치란(治亂)이 드러나기 전에 비[雨], 햇빛[暘], 더위[燠], 추위[寒], 바람[風], 때에 맞는 기후변화[時] 등의 징조가 먼저 나타난다고 하였다.(중략)

오횡묵은 홍범의 구절을 언급하여 재해를 초래한 원인이 위정자의 행위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위로는 임금부터 수령으로 있는 자신까지 자연재해 앞에서 하늘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함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고는 비가 안 와도 걱정이고 많이 와도 걱정이라며 직접 하늘에 올라가 조물주를 뵙고 바람의 신인 비렴(蜚廉)을 시켜 비구름을 쓸어버리게 하고 싶다고 하였다.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해 주고자 하려는 지방관으로서 고뇌와 애민의식을 엿볼 수 있다.(하략)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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