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중섭’…엽서화‧은지화 등 이중섭의 독특한 예술 세계 감상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중섭’…엽서화‧은지화 등 이중섭의 독특한 예술 세계 감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2.08.29 13:32
  • 호수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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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작품 등 90여점… ‘닭과 병아리’ 등 첫 공개

초현실주의 화풍 보여주는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소와 여인’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은 생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에 보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종이 살 돈이 없어 담배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려야 했을 정도로 힘겹게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4년 뒤인 1956년 4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은 이런 이중섭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 평생 공을 들여 1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구입했고, 이 작품들은 유족들에 의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이중섭이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그리워 하며 은박지에 그린 ‘가족을 그리는 화가’
이중섭이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그리워 하며 은박지에 그린 ‘가족을 그리는 화가’

‘이건희 컬렉션’ 중 국민화가 이중섭(1916~1956)의 작품만 모아 소개하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4월 23일까지 진행되는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에서는 이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 작품 80여점과 미술관이 기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작품 중 10점 등 총 9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닭과 병아리’와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처음으로 공개하고 ‘춤추는 가족’과 ‘손과 새들’ 등도 1980년대 전시된 이후 오랜만에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작품 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소개한다. 1940년대는 이중섭의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을 선보인다.

북한 평양과 원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중섭은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도쿄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다 1939년, 1년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한국 이름 이남덕)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때 이중섭은 연애편지를 쓰듯 손바닥 크기만한 관제엽서 앞면에 그림을 그려서 연인 마사코에게 보냈다. 1940년 처음 우체통에 넣기 시작해 3년간 88점을 보냈다.

이 시기 이중섭은 자유미술가협회를 무대로 활동했는데, 이 단체는 초현실주의와 기하학, 추상미술 등 당시로선 급진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다. 이중섭은 종이에 직접 선을 긋고 채색하거나 먹지를 눌러 선묘를 한 뒤 채색하는 방식으로 엽서화를 제작했다. 사람과 동물, 아이들을 소재로 하며 큼지막한 과일을 먹는 사람들, 사람처럼 춤추는 말, 사람과 물고기를 똑같은 크기로 그리는 등 상상력이 번득인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이다. 뿔을 잡고 소의 등에 탄 소년을 그린 작품인데 소의 하반신은 물고기처럼 꼬리지느러미가 있고 옆에는 작은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담고 있다. 

이중섭 ‘소와 연인’
이중섭 ‘소와 연인’

또한 1940년대 제작한 초기 연필화 4점에서도 초현실주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다. 1943년 ‘제7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한 ‘소와 여인’의 경우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배를 드러낸 소와 허공을 응시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관능적 포즈의 여인이 엉겨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황소’와 함께 이중섭을 상징하는 ‘은지화’도 대거 선보인다. 가난했던 이중섭은 종이와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버려진 양담배를 주워 담뱃갑 속 은박지를 화폭 삼아 그렸다. 은박지에 못이나 송곳, 펜 꼭지처럼 끝이 날카로운 소재로 그림을 그려 흑갈색 안료나 물감을 칠한 뒤 다시 닦아내는 ‘상감기법’으로 완성했다. 겨우 손바닥 남짓한 작은 은박지지만 이중섭 작품 세계의 정수가 담겨 있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가 대표적이다. 온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이 그려진 작품으로 화면 주변부로 물고기와 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52년 가족들과 헤어진 후 함께 살던 서귀포 시절을 추억하며 그린 은지화 중 하나로 추정된다.

1950년대 제작된 작품에는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작품마다 짙게 베어 있다. 후반기 그의 그림에는 아내와 두 아들 모습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네 식구가 서로 부둥켜 안고 있거나, 손잡고 나체로 춤을 추기도 하고,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꿈에 그리던 가족과 만나는 상상을 화폭에 담았다. 

이중 1950년대 전반기에 제작된 ‘현해탄’은 헤어진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중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 우측 하단에는 작은 배에 올라탄 남성이 있는데 이는 이중섭 자신을 그린 것이다. 남성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곳에 아내와 두 아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담고 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 속에서 화목하게 모인 가족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이번 전시에는 제주 출신 배우 고두심이 전시해설 재능기부에 참여해 이중섭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제주도의 장소적 의미를 살리고 있다. 전시해설은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과 전시장 내 QR코드를 통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며,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오디오가이드 기기 대여도 가능하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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