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79]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79]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 승인 2022.09.02 14:08
  • 호수 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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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나는 완전 바보 그대는 반절 바보

오경에도 시를 지어 그댈 부르네.

기다려도 오지 않아 꿈에까지 찾았건만

그대 와서 읊조릴 적 나는 알지 못했노라.

我是全癡君半癡 (아시전치군반치)

五更呼喚句成時 (오경호환구성시)

待君不至重尋夢 (대군부지중심몽)

君到吟詩我不知 (군도음시아부지)

-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사천시선비(槎川詩選批)』 권하 「차운하여 반치옹에게 사과하다(次謝半癡翁)」


시 제목에 언급된 ‘반치옹(半癡翁)’은 이병연의 벗 이태명(李台明)으로 반치(半癡)는 그의 호입니다. 이태명은 전주이씨로 이병연의 부친인 이속(李涑)에게 수학하면서 이병연과 교유하게 되었는데 시도 잘하고 시조창도 잘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인은 첫 번째 구에서 이태명의 호인 ‘반치(半癡)’를 장난스럽게 활용하여 자기는 ‘완전 바보(全癡)’이고, 이태명은 ‘반절 바보(半癡)’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두 번째 구를 보면, 시인은 오경이 다 돼서야 시를 완성하고, 기쁜 마음에 벗을 불러 함께 시를 수창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반가운 벗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3구의 ‘꿈에까지 거듭 찾았다(重尋夢)’는 표현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고, 이태명의 꿈까지 꾸었다는 말로 깜박 잠이 들었다는 것을 재미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4구를 보면 이병연이 쿨쿨 자는 사이, 이태명이 찾아왔고, 이태명은 자고 있는 이병연을 앞에 두고 화답시를 읊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나중에야 알게 된 이병연은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에 ‘자기는 완전 바보’라 하면서 그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시로 적어 전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를 읽다 보면, 기다리다 쿨쿨 잠이든 이병연의 모습과 그 앞에서 시를 읊는 이태명의 모습이 그려져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중략) 이병연은 왜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시로 그렸을까요? 시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도록 하지요.

시인은 새벽녘에야 시를 완성하였습니다. 이는 창작의 삼매에 빠져 날을 훌쩍 샌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시 완성에 그치지 않고 절친한 벗, 이태명을 부릅니다. 이태명이야말로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 화답해줄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 이태명은 바로 오질 않습니다. 왜일까요? 새벽이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4구를 보면 답이 보입니다. 이태명이 즉시 오지 않은 것은 자신도 이병연의 시구에 화답할 만한 작품을 고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만족할 만한 시가 지어지자 이태명은 이병연을 찾습니다. 그런데 기껏 찾아갔더니 정작 이병연은 쿨쿨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태명은 자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시를 목청껏 읊조립니다. (중략)

두 시인이 보인 예술적 교감은 진솔하고 깊은 사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략)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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