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칡덩굴, 등나무 그리고 갈등
[기고] 칡덩굴, 등나무 그리고 갈등
  • 이영숙 시인‧수필가
  • 승인 2022.09.02 15:00
  • 호수 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숙 시인‧수필가
이영숙 시인‧수필가

여름이 깊어 갈수록 칡덩굴의 기세는 온산을 휘감고 돌아 세상을 주워 삼키듯 뻗어나갔다. 그런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어도 줄기가 쭉쭉 당당하게 뻗어나가는 소릴 들을 수 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꼭대기까지 뻗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덩굴식물의 왕인 칡은 계절의 여왕 속에서 보랏빛 꽃은 귀부인처럼 아름답다. 선머슴 같은 거친 몸체에 비교하면 참한 새악시 같다. 갈래(葛來)는 칡이 뻗어 나온다는 말로 인생을 살다 보면 쌍갈래 길을 만나게 된다. 갈래길에서의 망설임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칡꽃 못지않은 등꽃은 어떠하리.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파고라 꼭대기로 길게 뻗는 줄기의 그 기상은 참으로 옹골차다. 싱그러운 오월의 보랏빛 등꽃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설렌다. 놀이터 지붕의 추녀로 늘어져 있는 꽃은 총상꽃차례다. 총상꽃차례는 무한 꽃차례의 하나로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끝까지 핀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매단 나무들, 칡과 등나무는 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것일까. 칡덩굴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니 그래서 갈등(葛藤)이라 한다. 갈등은 기대치가 높아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 살아가는 길목에도 갈등의 연속이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등이 일어난다.  

부부는 한번 맺어지면 좋든 싫든 영원히 가야 하는 머나먼 여정의 동행인이다. 어쩌다 만나는 친척도 대립이 생기거늘, 아침저녁으로 살을 맞대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만만찮은 동반자다. 그래서 부부간엔 될 수 있는 한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다. 치명적인 약점을 까발려 좋을 리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물질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제 자식을 돌봐야 하기에 부모를 챙길 여가가 없다. 부모는 몸이 노쇠해 자주 탈이나니 제일 큰 문제가 재산 문제다. 많든 적든 간에 부모의 재산을 노리게 된다. 영특해져 가는 자식들은 제 앞에 떨어질 것만 계산한다. 

부모는 보호받고 싶어 하고 자식은 버거워하니, 여기서부터 갈등의 골은 깊어 가는 것이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두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당연시돼 가고 있다.

어려서는 한 이불 덥고 의좋게 지내던 형제도 각기 다른 일가를 이루고부터는 자칫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형제자매는 하늘이 맺어준 친구지만 배우자가 정해지면서 이해타산으로, 또는 부모를 사이에 두고 무례해질 수 있다. 그래서 부모는 그때부터 정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어른이 중심이 서야만 집안이 구순히 지낼 수 있음이다. 어른은 존경받고 싶어 하고 자녀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기 때문에 깊은 골을 만들면 무시로 꼬여 들어감을 감지할 수 있다. 칡과 등나무처럼 양쪽으로 감겨 올라가다 보면 영영 풀 수 없이 어려워지고 만다.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양보하지 못하고 대립하는 것은 파괴만 가져올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