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만 가는 조손가정 대책 마련 시급
늘어만 가는 조손가정 대책 마련 시급
  • 이미정 기자
  • 승인 2009.05.14 15:27
  • 호수 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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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지원·상담서비스·조손가정 지원법 제정 등 마련해야

#박모(73) 어르신은 서울 양천구 반 지하 다세대 주택에서 손자 준이(10)와 단둘이 산다. 준이는 8년 전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이혼 후 며느리는 발길을 끊었고 아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집을 찾는다. 준이가 커가면서 박 어르신은 걱정이 많아졌다. 공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 때문에 학원 문턱도 넘어보지 못했다. 설상가상 박 어르신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유일한 수입처인 폐지마저 줍지 못하게 됐다. 주민등록상 아들이 부양자로 인정돼 정부보조금도 받지 못한다.

#서울에 살던 민수(9)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 가평에 있는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하지만 민수는 시골 생활이 심심하기만 하다. 전학 간 학교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로 지낸다. 민수는 서울 친구들이 그리워 매일 외할머니에게 서울에 데려다 달라고 조른다. 외할머니는 속도 모르고 보채는 민수가 야속해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민수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할머니가 밉기만 하다. 외할머니와 민수 사이에는 몇 달 동안 냉랭한 기운이 돌고 있다.


이들처럼 어린이들이 부모의 이혼 또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조손(祖孫)가족’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지원방안은 전무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부모의 이혼이나 가출, 파산 등으로 가정이 깨치면 고령의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떠안게 되면서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 교육, 세대갈등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부양대상인 조부모가 손자손녀들의 양육을 도맡으면서 발생하는 육체적·정신적 고충도 만만찮다.

현재 우리나라는 조손가족이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조손가족은 5만8000가구로 10년 전인 1995년 3만5194가구보다 29%나 증가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연구위원은 “조손가족의 증가는 부모의 이혼과 가출 등 가족의 해체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특히 저소득 계층일수록 이혼율이 높아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를 조부모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여성부가 전국 조손가족 가운데 무작위로 추출한 6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7년 조손가족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손가족의 발생사유로 ‘부모의 이혼 및 재혼’이 45%로 가장 많았다. 또 ‘부모의 사망’이 20.2%, ‘부모의 가출 및 실종’ 18.3%, ‘부모의 실직 및 파산’ 7.3% 등의 순이었다.

조사결과 조부모의 절반 가량인 47.6%가 70세 이상 고령이었다. 특히 저소득 계층이 많아 조사대상 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50만~70만원 미만이 31.0%로 가장 많았고, 30만~50만원 24.3% 등으로 절반이 넘는 55.3%가  70만원 미만의 한 달 생활비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이들 조손가족의 손자녀 학령이 초등학생 39.8% 외에도 중학생 26.9%, 고등학생 20.0% 등으로 중고생의 비율이 매우 높아 교육비 등 생활비 이외의 추가지출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큰 고충이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조손가정에 대한 별도의 지원이 없다보니 이들 대다수가 아동 또는 노부모에게 지급되는 약간의 정부보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는 아이들 부모의 생사조차 알 수 없으나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다는 이유로 정부보조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재 정부는 보조금을 비롯해 복지관 등 복지기관을 통해 학비나 생계비,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조손가족의 수에 비해 지원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손가족의 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자녀양육비 등 경제적 지원은 물론 상담서비스, 조손가정 지원법 제정 등의 지원과 함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혜영 연구위원은 “조손가족 대부분이 저소득 계층으로 경제적 지원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양부모 가정의 아이들과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문화적 향유권, 사교육 접근권 등이 강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손가정에 대한 별도의 지원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가족부는 기초수급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조손가족을 대상으로 지역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건강가정지원센터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손자녀의 학습능력과 특성을 고려한 방과 후 학교 및 지자체와 지역소재 대학 등과 연계, 인적자원망을 구축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의 1577-9337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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