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피해자 보호 못하는 ‘스토킹 처벌법’…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 등 대책 강화를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피해자 보호 못하는 ‘스토킹 처벌법’… ‘반의사불벌죄’ 규정 폐지 등 대책 강화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2.09.26 09:47
  • 호수 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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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지영 기자] 스토킹 피해를 당하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직장 동료였던 가해 남성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스토킹 범죄의 위험성과 이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함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월 14일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 역무원을 흉기로 살해했다. 30대 남성 용의자는 피해자의 입사 동기로,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불법 촬영물로 협박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용의자는 지난해 10월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고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직장에서 직위해제되고도 스토킹을 멈추지 않다가 올해 1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돼 9월 15일 두 사건을 병합 심리해온 1심 재판부의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경찰은 이 남성이 과거 피해 여성을 스토킹했었고 이런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던 도중 범행을 저지른 점에 미뤄 보복범죄로 보고 있다. 흉기와 위생모까지 준비한 계획범죄였다.

앙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보복범죄야말로 법치와 국가치안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최근 5년간 보복 목적의 범죄가 1500건 넘게 발생했다는 건 법 경시풍조의 단면을 드러낸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보복범죄 사건이 총 1575건 일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300건에 달하는 보복범죄가 발생했다.

보복범죄가 늘어날수록 선량한 시민과 범죄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숨어 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신변보호요청을 하는 사람이 급증한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 2018~2021년까지 6만2711건의 신변보호조치가 이뤄졌다. 특히 2018년 9442건이던 신변보호조치는 지난해 2만4810건으로 3년 새 무려 2.6배나 폭증했다. 성폭력에 따른 신변보호요청이 1만5221건으로 가장 많았다.

6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이 안전한 세상을 만들자는 외침 속에 만들어진 법과 제도는 스토커의 범행 앞에 무참하게 무너졌다. 전 동료의 집요한 스토킹에 오랫동안 시달린 이 여성은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때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신변조치가 끝나면서 또다시 악몽이 반복됐다. 충분히 범행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결국 이를 놓친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을 바란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가해자를 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 특성상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합의를 받으려고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2차 스토킹 범죄나 보복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우려가 입법 당시부터 제기된 바 있다. 

이 사건 피해자도 지난해 10월 가해자를 스토킹과 불법 촬영 등의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면서 지난 1월 재차 고소했다. 첫 고소 때 경찰은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기각했다. 

경찰은 2차 고소 때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고 결국 1심 선고 하루 전에 피해자는 살해됐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가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는 챙기면서도 피해자 보호는 등한시한 것이다.

스토킹 살해사건 10건 중 6건이 계획 범죄라고 한다. 하지만 올 들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4009명 가운데 구속된 사람은 4.8%에 불과하다. 스토커가 치밀하게 행동하지만, 수사기관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니 범죄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폐지하고 가해자의 전자발찌 등 위치추적 장치 부착과 구속영장 적극 청구 등으로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기로 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가해자 접근 금지와 휴대전화 연락 등 통신 금지, 구치소 구금 등 다양한 잠정 조치도 활용하기로 했다. 

범죄의 위협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처벌강화 등 피해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과 그런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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